[산중문답]원시림 둘레길 너머 봄이 내려앉은 한려해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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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원시림 둘레길 너머 봄이 내려앉은 한려해상공원
  • 김창식
  • 승인 2024.04.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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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숲

1.

거제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거제도는 칠천도, 가조도, 외도, 내도, 지심도, 화도, 이수도, 황덕도, 고개도, 산달도 등의 11개의 유인도와 51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내도는 거제도의 부속 섬으로, 섬의 섬인 셈이다. 전국적으로 거제의 외도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내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도는 작고 한적한 섬으로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없다. 내도는 9가구 15명이 산다고 한다. 내도에서 제일 높은 산의 높이가 131m이다. 구조라 선착장에서 도선으로 15분 거리에 있다. 내도라는 이름은 외도(바깥 섬)의 안에 있다 해 내도라고 하였다.

내도는 농토가 전혀 없는 척박한 땅이다. 주민들은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미역과 톳을 채취하면서 민박과 펜션을 운영한다. 내도는 대한민국 2호 명품 마을이다. 그동안 17개 명품 마을이 선정되었는데 대부분 국립공원 소속으로 자연 생태가 우수하고 문화적 특성을 보전한 마을이다. 내도는 원시림을 천천히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탐방로가 유명하다. 탐방로는 대부분 해안가 산길인데,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내도는 특히 동백나무를 비롯해 편백,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온대성 활엽수도 많다.

▲ 구실잣밤나무 군락지
▲ 구실잣밤나무 군락지

내도는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다. 태풍 매미가 통과하던 2003년 9월12일 내도는 방파제 역할을 해 주는 주위의 섬들이 없는 관계로 속수무책으로 거대한 파도에 당했다. 당시 내도의 작은 마을은 거대한 해일성 파도에 몽땅 파괴되었다. 그때 큰 피해를 본 주민들은 섬을 떠나지 않고 건축 자재를 일일이 배로 옮기면서 피와 땀을 흘리며 집을 지었다고 한다.



2.

내도둘레길은 ‘편백 숲길-쉼터-대나무 숲길-세심 전망대-억새밭-동백 숲길-연인길 삼거리-소나무 숲길-신선 전망대-소나무 숲길-연인길 삼거리-조류관찰지-희망전망대-신이대 옆길-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거리는 2.6㎞이다. 둘레길은 선착장에서 출발해 반시계방향으로 돈다. 해변을 따라 2분 정도 걸어가면 둘레길이 시작된다. 바다를 등지고 언덕을 오르는데, 수령 200~300년 된 원시 동백 군락이 함께 한다. 동박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 동백꽃
▲ 동백꽃

세심 전망대에 앉으면 살짝 외도가 보인다. 날씨가 따뜻한 탓인지 찬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가로운 풍경에 슬쩍 졸음이 왔다. 마테 레몬차를 마셨다. 졸음을 쫓고 걸음을 옮기니 대나무숲이다. 어릴 적 고향 집에는 제법 큰 대나무밭이 있었다. 대나무를 좋아했던 나는 대나무밭에서 자주 놀았다.

대나무로 활을 만들고, 칼을 만들고, 그렇게 이루어진 전쟁놀이는 뒷날 내가 전쟁을 전공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대나무밭을 지나면 양지바른 곳에 무덤이 간간이 보인다. 아마도 내도에서 평생을 보낸 어부의 무덤이리라.

어쩌면 내도의 주인은 저 무덤 속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도 섬을 떠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섬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무수히 많은 사연이 있으리라.

보리수나무와 천선과나무들이 보이고, 소망 가득한 돌탑, 고목들 새로 바위에 붙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콩짜개란들, 생명의 위대함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드러난다.

사람 키만큼의 적당한 높이의 동백들이 머리에 닿을 듯 말 듯 터널길을 만들고, ‘머리 조심’이라는 팻말이 완장처럼 발길을 짓누른다. 동백터널이 끝날 즈음에 후박, 참식나무, 생달나무 등이 파란 하늘과 바다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탈길을 내려가면 일명 해병대 나무라고도 하는 육박나무와 머귀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왕모시풀 군락지를 지나면 연인의 길 삼거리이다. 평상에 앉아서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한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이 별미다.

내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신선 전망대를 가려면 연인의 길 아치를 지나야 한다. 높지 않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이름표를 달고 있는 참식나무를 지나면 푸조나무, 노박덩굴, 동백나무 세 그루의 나무가 오랫동안 뿌리가 엉키면서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연인길 끝 신선 전망대는 한려해상의 멋진 풍경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외도와 외도 뒤로 해금강과 홍도 풍경이 펼쳐지고, 외도 반대편에는 서이말 등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단다.

연인의 길 삼거리를 지나면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 걷게 된다. 탱자는 그 자체로서 추억이다. 가시가 가시답지 않고 포근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계속 가니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보인다. 감나무와 돌담이 있다는 것, 지금은 아니어도 어느 세월에는 사람들이 살았으리라. 바다 건너 멀리 구조라항이 보인다. 일행 중 몇 사람이 해풍에 머리 내민 쑥을 캔다. 덩달아 나도 캔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나는 사내였어도 쑥은 물론 나물 캐러 많이 다녔었다. 어머니는 내가 캐온 나물을 보시고는 칭찬을 하시곤 했는데…, 바닷바람에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선전망대에서 바라본 외도와 해금강
신선전망대에서 바라본 외도와 해금강

 

3.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잠시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가 이내 해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이른 봄이었지만, 햇살은 뜨거웠다. 내 삶이 봄 햇살이었으면 했다. 이윽고 배가 오고, 선장의 구수한 사투리 소리, 작지만 아니 작아서 아름다운 섬 내도, 언제 다시 오려나.

봄날이 돌아왔다는 말 들었으나 아직 알지 못해 / 찬 매화 곁에 달려가 봄소식을 물어보네. 聞道春還未相識 / 走傍寒梅訪消息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이백의 한시 ‘早春寄王漢陽’의 1연과 2연이다. 진작에 봄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내 알지 못했는데, 내도에 와서 보니 온통 봄이다. 봄은 가만히 앉아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을 움직여 봄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는 자연을 찾았을 때, 봄이 내게로 온다. 한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전한 원제의 궁녀였으나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간 불운한 여자 왕소군을 두고 지은 동방규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꽃과 풀이 피었어도 가만히 있으면 볼 수 없다. 이백처럼 찬 매화 곁으로 달려가서 봄소식을 물어야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좋은 계절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너도나도 짬을 내어 봄을 찾아 나섰으면 좋겠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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