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맞는 겨울나무 숲에 가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連帶(연대)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 숲은
木炭畵(목탄화)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 숲은
聖者(성자)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내리고
겨울나무 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 버리고
인근 산의 積雪量(적설량)을 엿보는 겨울나무 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서로 기대고 버티며 겨울 이겨내는 나무들

이 시는 황지우 시인의 <나는 너다>란 시집에 실린 시이다. 나는 너다, 그러니까 너는 나다.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일치와 대동, 연대를 시집 제목에서 생각하게 된다. 1이 나, 2가 너, 1과 2가 합쳐서 만들어진 12는 우리. 12는 나와 너, 그러니까 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나와 너의 구별이 없는 대동의 모습을 우리는 눈맞는 12월의 겨울 숲에서 본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은 서로 엇비슷해 보인다. 잎이라는 외피를 벗음으로써 나무는 나무라는 본질을 드러내며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 껴안을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들판에 홀로 서 있다면 혹심한 추위에 얼어버릴지 모르지만, 나무는 함께 있으므로, 연대했으므로 숲을 이루며 추위를 이긴다. 버틸 수 있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지났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동지를 새해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이 시집은 1987년에 나왔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우니 시인이 기다리는 ‘어떤 전달’을 우리도 기다린다. 봄이 오고 있다는 희망의 전언을.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