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48)]영산홍(映山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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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48)]영산홍(映山紅)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04.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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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요즘 공원에 나가 보면 ‘꽃불’ 같은 영산홍(映山紅)이 한 가득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활짝 핀 꽃 사이 사이에 맺힌 꽃봉오리는 마치 붉은 주머니를 연상케 한다. 태화강 국가정원의 언덕배기에는 이미 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영산홍은 철쭉꽃의 하나로, ‘왜철쭉’이라고도 한다. 붉게 피는 것을 영산홍(映山紅), 하얗게 피는 것을 영산백(映山白), 자줏빛을 띤 진분홍으로 피는 것을 영산자(映山紫)라고 한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이 펴낸 <양화소록>을 보면 영산홍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세종 23년(1441) 봄, 일본에서 왜철쭉 두어 포기 조공으로 보내왔다. 대궐 안에 심어두고 봤는데, 꽃이 무척 아름다워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같다’는 구절이 있다. 서시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미인계를 썼을 때 선발된 미녀이다. 서시가 개울에 빨래하러 오면 시냇물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서시의 미모에 넋을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해서 서시의 미모를 ‘침어(沈魚)’라고 하기도 한다.

 

영산홍을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폭군 연산군이었다. 하물며 꽃 이름을 영산홍이 아니라 ‘연산홍(燕山紅)’이라고 불렀을까. 연산군은 집권 말기로 가면서 꽃을 감상하는 수준이 광적으로 변했다. 연산군은 “영산홍(映山紅) 1만 그루를 후원(後苑)에 심으라”고 명했다. 그러면서 재배한 영산홍의 숫자를 일일이 확인하게 했다. 영산홍에 대한 집착은 이 꽃이 다른 어떤 꽃 보다 화려했기 때문이었다.

인조도 영산홍을 매우 좋아했다. 대신들은 인조가 영산홍을 너무 좋아해서 정사를 돌보는데 소홀할까봐 궁 안에 있는 이 꽃나무를 베어냈다는 일화도 있다.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영산홍(映山紅)’ 전문(서정주)



영산홍(映山紅)은 비칠 영(映)과 산 산(山)과 붉을 홍(紅)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에는 영산홍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하도 붉어서 영산홍 꽃잎에 앞산이 어린다. 아름답고 애처로운 소실댁(小室宅). 기다림에 지친 갈매기가 소금 발이 쓰려서 울고 있다. 두메산골 어디선가 피울음 삼키는 4월, 두견새가 울기 시작하고 이윽고 4월도 중순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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