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박노해 ‘겨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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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박노해 ‘겨울 사랑’
  • 경상일보
  • 승인 2025.01.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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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시련은 견고해지기 위한 담금질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어떤 씨앗은 영하의 추위를 지나야 싹을 틔우거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씨앗을 일부러 추운 곳에 보관하는데, 이를 춘화처리라고 한다.

볍씨는 소한에서 대한 사이 차가운 물에 담가놓아야 봄의 모판이 푸르러진다.

늦가을에 심어서 싹이 튼 상태로 겨울의 찬 기운을 견딘 겨울 보리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느냐고 시인이 묻듯이, 추위는 오히려 작물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현상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겨울 추위, 그러니까 시련이나 고통은 오히려 우리를 견고하고 강하게 담금질한다.

이웃의 힘듦을 헤아리고 작은 선의에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도 추위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때 추위로 인한 떨림은 사랑의 떨림으로 바뀌게 된다.

은박지로 몸을 감싸며 추위를 견디는 광장의 새싹들은 스스로 춘화처리를 하는 게다. 스스로 깊어지는 게다. 사랑을 전하는 게다. 그리하여 새봄엔 더 아름답게, 더 환하게 꽃을 피우리.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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