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님도 이별이 쉽지만은 않다
임 이별 하올 적에 저는 나귀 한치 마소
가노라 돌아설 제 저는 걸음 아니런들
꽃 아래 눈물 적신 얼굴 어찌 자세히 보리요 <금옥총부>

우리의 삶에서도 북풍이 불어 불어올 때가 있다. 눈보라 치는 벌판에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임과 이별하려는데 귀한 임의 나귀가 다리를 절고 있다면 어찌 마음속 한탄하지 않을 손가.
북풍은 산을 넘어 들판을 지나 안방을 파고 든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은 안개 낀 그런 밤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은 밝아온다. 떠나가던 임이 다시 돌아오고 나를 지나쳤던 행운의 여신이 나를 찾아오는 그런 시점이 올 때는 온다. 춘분이 머지않다. 생명의 온기를 싣고 멀찌기 봄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억울한 하루를 살고 나면, 오묘하고 역량이 웅대한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사냥개처럼 큰 술독을 지고 미친 듯 취한 상대를 초대하여 일거수일투족을 제압하여 나의 것으로 취하는 절창으로 읊는 날이 올 때는 올 것이다. 울며 잡은 소매 차마 떨치고 돌아서는 임 앞에, 나귀는 다리를 절고 오히려 다리 저는 나귀 덕분에 임의 눈물 적신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 그 또한 꽃이요 봄이다. 임이 어디 품에 안은 님만 님인가. 나라님도 님이요. 마음으로 받드는 스승님도 님인 것이다. 시대를 지탱하고 가는 이념도 님이다.
타고 가실 임의 나귀가 절고 있다는 표현은 시대를 이끌고 가는 이념이 한곳으로 쏠려 임과 이별하는 것과도 같은 심정으로 읽을 수도 있다.
님이 떠나가려는데 귀한 임의 나귀가 다리를 절고 있다. 그로하여 꽃 아래 눈물 적신 님의 고운 얼굴을 보았으니, 임도 나와의 이별을 슬퍼함을 보았으니 다리 저는 나귀가 고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서얼 출신인 안민영의 생애는 기록이 자세하지 않다. 박효관(朴孝寬)에게서 창법을 배웠고, 1876년에는 스승 박효관과 함께 856수의 시조 작품을 정리해 ‘가곡원류’를 편찬하였다. 이는 ‘청구영언’ ‘해동가요’와 함께 3대 시조집으로 꼽는다. 눈물 적신 임의 얼굴이 곱다고 읊을 수 없는 역사의 아침이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