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등 전국 산불 피해 확산]화마 덮친 언양 신화마을 “12년전 악몽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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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등 전국 산불 피해 확산]화마 덮친 언양 신화마을 “12년전 악몽 되풀이”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5.03.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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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자리한 길상사 법당이 전소해 지붕이 내려앉고 내부엔 검은 잔해만 남아있다.
▲ 26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신화마을의 한 건물이 전날 발생한 산불로 전소돼있다.
▲ 26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화재로 소실된 창고 모습.
12년 전 악몽이 다시 언양을 덮쳤다. 피해를 입은 주민은 까맣게 탄 집터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고, 천만다행으로 화마를 피한 주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모든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다시 남겼다.

26일 찾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자리한 사찰 길상사는 화재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내려앉았다. 지붕은 녹아 휘어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법당이 있는 본건물은 물건을 챙길 새도 없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다.

25일 발생한 화재 당시 길상사 주지 스님은 건물 뒤쪽로 접근한 불길을 막기 위해 직접 소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건물 양방향으로 불길이 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피하려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길상사는 지난 2013년에도 화재 피해를 입어 창고 건물이 완전히 소실됐다. 당시 화를 면했던 법당은 이번에는 무사하지 못했다.

김덕호 길상사 사무장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면서 “혹 피해 보상금이 나온다고 해도 법당을 재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길상사가 있는 산기슭은 소방의 대처로 추가 주택 피해는 없었다. 밤새 잔불을 잡기 위해 인근을 순찰하던 소방은 26일 오전 8시 잔불이 진압된 것을 확인하고 하산했다.

언양읍 직동리 신화마을 역시 밤새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분주히 마을을 오갔고, 일부 주택은 검게 타 뼈대만 앙상히 남았다. 경로당 너머 산자락에는 남은 잔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12년 전 발생한 대형 산불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주민들은 또다시 발생한 산불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고, 직·간접적인 피해를 본 주민들을 다독였다.

이번 화재로 살던 집이 모두 타버린 이윤연(76)씨는 당분간 경로당에서 생활해야 한다. 불이 번지기 전 대피해 다행히 몸은 성하지만, 수십년 간 지내온 터전은 사라졌다.

이씨는 “대피령을 듣고 짐을 챙길 새도 없이 몸을 피했다. 진화 소식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부터 집이 보이지 않기에 설마 하는 마음이었는데 까맣게 타버린 집터만 남아있었다”며 “황망한 마음에 눈물만 흘렀다. 이웃들의 위로 덕에 마음은 진정됐지만 당장 생활할 공간이 없어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이어 “2013년 산불이 발생했을 때 호스로 연신 물을 뿌리며 집에 불이 붙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있다”며 “12년 전에도 버틴 집이었는데, 참담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3년 화재를 기억하는 또 다른 주민 구동수(89)씨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피처인 경로당에 나와 심정을 털어놓았다.

지난 25일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이 점점 집 근처로 번져오는 걸 목격한 구씨는 머뭇거릴 시간도 없이 가방을 꺼내 들고 옷가지와 귀중품 등을 챙겼다. 12년 전 화재로 수십 년간 가꿔온 집과 농지를 전부 잃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기 때문이다.

구씨는 “멀리서 타는 냄새가 나고 불길이 커지는 걸 바라보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면서 “당시 화재로 전소한 집을 재건하고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산불이 났다는 소식에, 불이 잡혔다는 뉴스를 보고도 밤새 가슴이 벌렁거렸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은정기자 ·주하연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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