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하는 인사말은 친소에 상관없이 거의 비슷하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다. 이런 가벼운 인사는 별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의례적인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별일 없느냐고 묻는 가벼운 말이 안부 인사로 어울리지 않은 시기가 온다. 조금씩 힘든 일들이 시작되는 생애의 과정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별일은 몸이나 정신의 건강 상태에서부터 생겨난다. 육신의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도 적응이 필요한 특별한 일이 된다.
그래서 비슷한 연배의 친구를 만나면 좀 더 실질적인 안부 인사를 하게 된다. 그중에는 사소하지만 모두 공감하는 안부 인사도 있다. 잠은 잘 자는지 물어본다. 아직 사회적 역할을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 낮의 활동보다 밤의 휴면을 묻게 되는 이유가 있다. 하루도 피할 수 없는 수면의 과정이 순조롭지 않고서는 일상이 평안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숙면을 얻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줄어든다. 잠 못 이루는 밤은 문학적 표현처럼 그렇게 낭만적인 시간이 아니다.
흔히 밤은 내일을 위한 재충전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일의 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에게 밤은 가벼운 휴식 시간이 아니다. 밤은 낮보다 훨씬 다루기 힘든 하루의 절반이다. 침대나 소파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책상 위에서의 독서도 형광 불빛을 견디는 젊은 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문수산 등산길에서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항상 맨발로 다닌다. 험한 등산길을 맨발로 걷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목적은 깊은 잠을 이루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통잠을 잘 수 있다는 그의 권고에 귀가 솔깃하지만 아직은 등산화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숙면이 무상으로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밤의 안식은 낮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잠들지 못하는 밤의 시간이 개인의 인생사를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자서전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겪은 지난 일들에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과거 시간을 들추어 보고 다시 정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삶을 반추하는 과정은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보다는 회한과 고통을 동반하는 참회의 시간이 되기가 쉽다. 이러한 시간을 스스로 만든 이성의 법정이라고 표현하는 철학자도 있다.
회고하고 반성하는 마음의 법정은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않는 것 같다. 풍부한 삶의 지혜를 항상 견지하고 있어 주위로부터 신망받는 노인을 알고 있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만한 무난한 삶을 살았다. 그래도 혼자 있는 밤이 되면 지난날의 성취보다는 아쉬운 선택에 대한 회한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고 고백한다. 소설보다 두껍다고 말하는 자신의 자서전 페이지를 다시 넘기는 시간이 힘들다고도 한다. 모든 감각과 감정의 강도가 약해지는 노년에도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기능은 그대로인 것 같다. 인간의 숙명 같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밤에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시인도 있다. 이진명은 그의 시에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술회한다. 용서하는 마음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사색을 통해서 자유에 다다른 시인의 경지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화해나 용서와 같은 말들이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밤에 더 어울린다는 시인의 감성에는 공감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용서와 자신에 대한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밤의 시간이 긴 사색을 위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세상과 화해하는 사유를 발견하는 시간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루의 숙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들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