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내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상(氣象)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보편적 대기의 종합 상태인 기후(氣候)는 대기권, 수권, 빙권, 생물권, 지권의 5개 요소의 기후시스템 안에서 끊임없는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었다. 인류는 지난 1만년간 공기, 지표, 해양, 얼음, 식생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이 기후 시스템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18세기 후반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 문명에 거대한 변혁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지구 온도 상승을 초래하여 기후 시스템에 위기를 넘어 붕괴의 위협까지 가중시켰다. 전 세계 곳곳에서 폭염, 가뭄, 산불, 폭우, 홍수, 한파, 폭설 등 유례없는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최근 다양한 기상 재해로 인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유례없는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 비록 3~4일 주기로 내리는 비가 산불 위험을 일부 완화시켰지만, 산불 경보 수준은 여전히 ‘심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더 큰 문제는 다가오는 여름이다. 역대급 화재로 인해 산림이 소실된 지역은 장마철을 앞두고 복구가 시급하다. 기후 변화로 인해 봄철 건조함은 극대화되고, 여름철에는 집중호우가 빈번해지는 패턴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산불 발생 지역에 대한 신속한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사태와 같은 ‘시간차 재난’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위험의 시작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불이 지나간 후,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산지에서는 두세 달 뒤에 산사태 발생 위험이 커진다. 울창했던 숲의 나무들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토사가 쉽게 유출되는 취약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 산 계곡 주변으로 물이 집중되는데, 나무들이 완충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다량의 빗물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오는 유역이 형성될 수 있다. 기상청의 장기 기상 전망에 따르면, 6월 여름철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80%로, 발달한 저기압과 대기 불안정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장마철이 오기 전까지 산림 복구가 시급하다.
산림청 조사복구단은 기존의 정밀한 조사 방식을 변경하여, 위험 지역이나 취약지를 선별하고 사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위험한 지역을 중심으로 제방을 쌓거나 사방댐 등 골막이를 설치하여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또한, 토사 유출 가능성이 있는 민가 주변에는 구조적 혹은 비구조적 대책을 마련하고, 산불 경계지 주민에게 위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산사태 위험 지도를 개발해야한다.
지구온난화가 낳은 가뭄, 이 극한 가뭄으로 야기된 대형 산불이 집중호우를 만나 산사태를 불러일으키는 기후 되먹임 현상에 따라 초래되는 시간차 기후 재난으로 더 이상의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와 예방이 필요하다.
맹소영 기상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