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숨결이 바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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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숨결이 바람 될 때
  • 경상일보
  • 승인 202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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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죽음에 대한 사색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인생을 만들 수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기도 한다. 베풀며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실천이 어렵다. 태어나 죽지 않는 생명은 없다. 젊고 건강할 땐 질병이나 죽음은 타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막상 본인에게 불치병이 찾아와 시한부로 살아가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여기 생사에 대한 고찰을 부르게 하는 자전적 기록이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다. 저자는 폴 칼라니티로 신경외과 의사이자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촉망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폐암 말기라는 중병 진단 후 사망에 직면하였다. 젊은 의사로서 생사(生死)와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죽음을 의학적으로 다루다가 이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를 담담하고 강렬하게 풀고 있다.

그는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을 좋아하며 인간의 정신과 두뇌를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이러한 몇 가지 학문의 교차점에 있으며 이론적 사유보다 실천적 지식을 우선하여 의사가 되기로 하였다. 신경외과는 신체에서도 본질적인 자아가 자리하는 뇌를 다루는 분야이다. 그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 거의 끝나가고 최고의 의사로서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제안받는다. 삶의 절정을 맞이하려는 시점에 암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이 그를 덮친다. 질병은 그를 의사이자 환자로, 그리고 철학자로 변화시킨다.

그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지만, 동시에 남겨진 생을 어떻게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치료를 받는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마지막 시간까지 품위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는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다.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했다. 이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충실히 채우며 살아가는 태도이다. 그는 남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생의 보람을 발견하고자 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의미 없는 삶이다.

폴은 남은 시간이 3개월이라면 가족과 함께 보내고, 1년이라면 책을 쓰고, 10년이라면 마지막까지 의사라는 직업에 충실할 것이라고 하였다. 귀천이 가까워지는 것을 알게 되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근원적인 물음으로 인간은 자신의 생을 온전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존재다. 운명이란 어려운 일이며, 때로는 가혹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는 그러한 현실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두려워하기보다는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그는 운명을 받아들이되, 무기력하게 굴복하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를 두텁게 가꾸며,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 자기의 내면을 적으며 종국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존재를 완성해간다. 이것은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와도 맞닿아 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는 불운을 한탄하는 대신, 남아 있는 시간을 온전하게 살아갈 길을 향했다.

기록에서 그는 질문을 암시한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에 이를 것이고,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은 유한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는 무한하다. 작가는 그 한계를 직시하면서 최고의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우리는 종종 현재를 소홀히 하면서 미래를 기약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불투명한 미래가 있음을 알면서도, 현재를 알차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내일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집중하였다. 미완성 원고는 아내가 마무리하였지만 최선을 다하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당장 오늘 세상을 떠나야만 할지라도 미뤄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를 체크하고 완성에 열중해야 한다. 꿈꾸던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야말로 마지막까지 운명을 열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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