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흩날리는 꽃잎만큼 인간사도 어지러운 4월이다. 글 친구가 보낸 한 편의 시로 뒤숭숭한 심사를 달랜다. ‘어젯밤 비에 꽃피더니( 花開昨夜雨)/ 오늘 아침 바람에 꽃 지네(花落今朝風)/가련하다. 한갓 봄날의 인간사여.(可憐一春事)/바람과 비속에 오고 가는구나.(往來風雨中) ’ 가는 세월과 권력의 무상함을 노래한 올봄에 딱 어울리는 송한필의 절창이다.
작년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능가했다는 소식이고, 여타 분야에서도 세계 선두권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유독 정치는 늘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야당은 정치적 목적으로 고위공직자 20여명을 줄 탄핵하고, 대통령은 이에 맞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도박판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계엄 정변은 대통령의 파면으로 일단락됐지만, 극단적인 정쟁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거리에는 민주주의의 승리 운운하는 정당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지만, 실상은 정치의 실패로 수많은 피해자만 양산했을 뿐 얻은 것은 없다.
혼란 속에 노심초사하다가 거리로 내몰린 국민, 얼떨결에 국군통수권자의 명을 받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어정쩡하게 출동했다가 역적으로 몰린 군인들, 순간적인 군중심리로 서부지법을 난입했다가 구속된 젊은이들.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영업을 망친 수많은 영세 상인들.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떠맡아 곤욕을 치른 법원과 헌법재판소. 추락한 국격까지 더하면 피해 규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급기야 용맹의 상징인 특전사령관이 “참 말도 꺼내기 조심스러운데 솔직히 내가 가진 게 한 개도 없다. 나중에 어려워지면 좀 도와주라.”는 토로를 할 지경까지 몰고 간 정치권의 행태는 참으로개탄스럽다.
외형적으로는 대통령이 사고를 쳤지만 따지고 보면 연대책임을 져야 할 여·야 의원들은 대국민 사과 결의라도 함이 옳은데 기대난망이다. 게다가 일부 식자들과 국회의장이 제안한 개헌 논의는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거부하는 바람에 동력을 잃고 말았다. 박근혜 탄핵 후부터 제기된 개헌 논의는 당시의 유력 후보들은 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행은 당선 이후로 미뤘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모두 입을 닦고 말았다. 정치권에서는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정할 최소한의 노력도 외면한 채 오직 눈앞의 권력 쟁취에만 급급해 애국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정치제도는 제각기 장단점이 있어서 바꾸어 본들 정치 공학적으로 악용하려 들면 상황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정치 실패의 근본 원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오직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애국심의 결여와 대화와 타협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철학 부재(不在)에서 찾아야 한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에서도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헌법이 정한 권한분배 질서에 따른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한다.”라고 이번 정변의 근본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케네디 이래 미국 민주당의 숙원이었던 오바마케어(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가 미 의회에서 가결되기까지 오바마는 100여회 반대 측과 대화하고, 수 십명의 공화당 의원들을 직접 설득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선거인단 4명 차이로 패배한 ‘엘 고어’ 후보는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판결을 받아들이면서 “법원의 판결에 강하게 반대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다. 국민으로서 우리의 단결과 우리 민주주의의 견고함을 위해 양보하겠다. 나는 이제 부시 당선인에게 당파적인 감정은 내려 놓고 신이 그가 이끄는 나라에 축복을 내려 주기를 바란다.”는 애국적인 승복 연설을 남겼다.
멋지지 않은가. 두보(杜甫)는 “꽃잎 하나가 떨어지면 봄날이 한 뼘 줄어든다.(一片花飛減却春)”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였다.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조기 대선을 넘보는 정치인들의 환골탈태를 주문한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