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서툴러도 서두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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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서툴러도 서두르지 않아
  • 경상일보
  • 승인 2025.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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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

‘학생자치’ 업무를 처음 맡으며 막막했던 나에게 소리 없는 응원이 되어준 책이 있다. 완벽한 준비를 기대하기보다는, 서투름을 반복적으로 수용하고, 느리지만 치밀한 노력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진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탤런트 코드>(대니얼 코일 지음)다. ‘흔히들 원하는 힘들이지 않는 수월한 연습’이 아닌, 현재 능력보다 살짝 높은 목표를 선택하고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목적에 맞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탁월함’을 이룰 수 있다는 책 내용을 읽기만 해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업무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레 학생자치의 의미와 본질을 되물었다. 자신이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 즉, 한 개인이 권위자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삶을 영위해야 하듯, 공동체의 구성원 또한 개인의 자율성을 지키면서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의 학생자치는 단순히 학생회 회의나 학교 행사 참여라는 제한된 의미가 아닌, 학생들의 실제 삶과 맞닿아 있는 본질적인 의미가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

학생자치의 중요성이 깊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음도 생생히 느꼈다. 학생자치를 지도하고 지원하는 교사들 역시 학창시절 체계적인 민주시민교육을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교사의 자리에서 학생들과 회의를 운영하거나 갈등을 조율하는 기술, 자율성과 공동체 의식을 키워나가는 과정과 문화를 새롭게 배우고 만들어가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월과 4월에 울산교육청에서 실시한 ‘학생참여위원회 정책이해 교실’을 진행하신 커뮤니코 임세은 대표님과 최근 울산교육연수원에서 실시한 ‘학생자치 역량 강화 교사 직무연수’에서 경상남도교육청 교육인권경영센터 이필우 센터장님과 안산 석호초등학교 이영근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관점의 변화가 있었다. 오랜 시간 학생자치 실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분들의 이야기와 학생과 학교의 변화를 목격하며, 학생자치의 본질은 결국 ‘인간에 대한 존엄이자 사랑’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학생자치는 공동체의 구성원인 학생이 존엄한 인간으로서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체득해야 할 과정이며, 이 중요한 배움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학교라는 공교육의 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 그저 반가웠다. 학생자치는 단순한 회의나 행사가 아닌 ‘학생 생활 문화’로, 이 문화 위에서 학생들의 통합적인 인성력이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탤런트 코드>에서 강조하듯, 진정한 성장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서투름 속에서 시작된다. 학생자치를 통해 피어나는 인간 존엄의 학교 문화, 아직은 투박하고 서툴 수 있다. 서로의 실수를 허용하는 안전한 학교 환경 속에서, 서툴지만 아름다운 여정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충분히 탁월하다.

김건희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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