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아시나요? 아이들과 교사들을 진료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입니다. 20여 명밖에 안 되는 그 교실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정말 기막히고 우려스럽습니다. 우선 반의 약 10%가 되는 ADHD 아동이 산만하고 무분별한 행동으로 교실 분위기가 안 좋아집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의 문제가 있기에 충동적이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이니 그렇지요.
그런데 이렇지 않은 아이들은 괜찮을까요? 무례하고 시건방진 언행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반장이나 부반장 등 리더로서 공부를 잘하여 똑똑하다고 불리는 그룹이에요. 이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리고 미숙하기에 자기가 안다는 것을 티 내고 싶어 하죠. ‘난 아는데’란 태도는 수업에 집중을 못 하게 하고, 이미 아는 것을 설명하는 선생님과 처음 듣는 친구들을 우습게 여기게 만듭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틀리는 애들을 비웃으며 정답을 말해버리죠. 심지어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르면 선생님께 지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실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요? 치료받고 있지 않은 ADHD 아동과 너무 똑똑한 애들, 그리고 품행장애까지 이러한 세 그룹은 어느 교실이나 존재하며 반의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ADHD 아동은 집중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만 몰입하니, 지루한 공부에는 사부작거리고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무분별한 말을 해서 면학 분위기를 흔들죠. 똑똑하기만 한 애들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대단한 것인 양 친구들에 군림합니다.
과외를 통해 선행학습을 하였기에 학원 원장님과 어머니가 자신의 선생님이며 교사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아닙니다. 선행학습을 주도하는 어머니들 중 일부는 아이 공부의 진전과 성취만 중요시하죠.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을 다 해주며 지금의 성적이 미래 SKY 대학 입학을 결정한다며 아이의 모든 일정을 조율합니다.
강남의 초등학생은 이미 미적분을 선행으로 배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밑의 휴지조차 주울 줄 모르고 혼자서는 학습을 준비하지 못하며 친구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공감하지 못하는, 기본품성이 부족한 아이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ADHD 아동이야 치료하면 극적으로 달라져 차분한 아이가 되지만, 이 선행학습 아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여러 부작용으로 힘들게 된다는 것을 그 부모는 모를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미적분을 벌써 하는 것에 행복할 이는 부모와 학원원장입니다. 계속 앞서 진도를 나가본 애들은 학교 공부에 호기심이 없고 지루해하며 똑똑한 체하다가 친구를 잃어 외톨이가 될 수 있죠. 꾸준히 최상위를 유지하는 극소수 외에는 결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좌절을 겪는데 이를 견디지 못하더군요. 부모의 실망과 떨어지는 성적에 자존심이 꺾이며 방황하며 우울해집니다.
십 대의 시기에는 교실에서 새로운 지식에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거리며 선생님을 선망해야 합니다. 친구들에 군림보다는 같은 입장에서 어깨동무하며 갈등 해결을 해나가며 작은 사회를 배워야 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똑똑한 아이보다는 지혜로운 아이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미적분을 풀 수 있는 아이보다 교실에서 배운 내용이 더 궁금해서 사전과 지도를 펼치는 아이가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며 지혜롭게 자랍니다.
스스로 하는 책임과 성실을 체득한 아이가 경청과 공감을 하니 친구들이 따르며 온화한 지도자가 됩니다. 초등과정을 이미 다 학습한 부모와 아이가 학교와 교사를 존중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성장했던 아이가 이제 사회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나요?’ 따져 묻고, 조직과 동료에 화합하는 노력을 ‘왜 해야 하는지?’ 묻는 젊은이들이 보입니다. 협동과 교감보다는 개인주의와 성과주의로 자라났고, 인간적 면모가 부족한 청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상상해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