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가 기승부리기 전인 2020년 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신년 음악회에 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는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축제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이 음악회는 단순한 연주회를 넘어 세계인의 신년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연주 장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공연장인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의 황금홀이다.
운 좋게도 음악회 티켓을 구해 여성 친구 3명과 함께 빈으로 갔다. 음악회장에 입장하니 각국에서 온 관객들이 저마다의 전통과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으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유럽 남성과 여성들은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었다. 일본 여성들은 모두 기모노 차림이었다. 이는 단지 드레스 코드 차원을 넘어 자신이 속한 문화의 품격을 세계 무대에 올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일행 4명도 한복을 입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음악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되는 느낌을 받았다.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왈츠와 폴카 중심의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 곡인 라데츠키 행진곡에서는 지휘자가 관객의 박수를 유도해 연주를 마무리했다.
음악회가 끝나자 여러 참석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복의 고운 색감과 곡선이 신선한 아름다움으로 다가가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으로 느껴졌다. “옷이 정말 아름답네요. 어디에서 왔나요. 한복이라고요. 전통의상 맞죠” 등의 탄성이 쏟아졌다. 영어로 대화했지만, 감탄의 눈빛은 통역이 따로 필요 없었다. 같이 사진 찍고 싶다는 요청도 잇따랐다. 그중 한 사람은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성이었다. 미소 띤 얼굴로 다가와 “한복이 너무 매혹적이에요. 사진을 함께 찍어도 될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고, 그녀는 한복의 색감과 단아한 자태에 대해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장관이라면서 “남편을 따라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해 그 나라 고유의 의상을 봐왔는데 한복이 이렇게 우아하고 기품있는 옷이란 것을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라고 했다. 한복을 입은 우리들은 또 다른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음악회가 끝난 후 근처의 유명한 맥줏집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실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곳에선 한 악사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 친구들이 필자를 가리키며 장난스레 말했다. “얘도 아코디언 연주를 잘 해요. 아코디언 악단 단장이에요“ 라고 말하자 악사는 환하게 웃으며 필자에게 아코디언을 건네며. 한 곡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어떤 곡을 연주할까 생각하다가 ‘아리랑’으로 정했다. 한국적 정서를 담은 애잔한 선율이 울려퍼지자, 순간 맥주잔을 들고 있던 사람들의 손이 멈췄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평소 필자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여러 장르를 넘나들지만 가장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순간은 언제나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곡을 연주했을 때였다고 기억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 맥줏집에서 ‘아리랑’을 아코디언으로 연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복과 아리랑에 쏟아진 찬사는 한국 문화가 주는 매력때문이리라. 그날 한국적인 것이야말로 세계적인 것이고, 우리가 지닌 고유한 문화야말로 외국인들에게도 가장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한국은 더 이상 문화의 변방이 아니다. 한류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K-팝, K-드라마, K-푸드에 이어 전통 문화까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화의 이질감속에서 보편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에 끌린다. 우리만의 개성과 독특함 속에는 숙성된 전통과 품격,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담겨 있다. 한국적 전통은 낡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보편성과 현대성이 담겨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야말로 세계와 통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희경 해당화 아코밴드 단장 재경울산여고 동문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