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26일, 울산 남구의 한 주택 철거 현장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2층 높이의 단부 개구부에서 작업자 한 명이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높이 2.4m. 평소 우리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느끼는 거리보다 조금 높은 정도지만, 그 작은 차이가 한 생명을 앗아갔다. 이 사고는 단순한 실수도, 불운도 아니었다. 현장에 안전은 없었고, 책임도 없었다. 남겨진 것은 허망한 죽음과 반복되는 후회뿐이었다.
소규모 철거공사는 자주, 그리고 조용히 진행된다. 골목 어귀의 단독주택, 오래된 상가건물, 빈 창고 하나가 무너질 때쯤이면 이미 현장엔 작업자 몇 명이 철거에 들어가 있고, 곧 잔해만 남는다. 그 사이 안전관리자는 없다. 관리책임자도 없다. 형식적인 작업계획도, 개구부에 난간 하나 설치된 모습도 찾기 어렵다. 책임은 없고, 조심스레 작업하라는 구두 전달만 남아 있다. 공사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우리는 너무 많은 위험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번 사고 역시, 그런 소규모 현장의 전형적인 비극이었다. 단부개구부에 안전난간 하나 설치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고작 몇 만 원의 자재비와 십여 분의 작업시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조치가 없었다. 안전에 대한 기본이, 구조적인 무관심 속에 묻혀 있었다.
이처럼 소규모 철거공사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안전관리자와 관리책임자를 선임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 철거공사는 안전관리 여건이 열악하다. 작업자는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투입되고, 별다른 교육 없이 공사에 투입된다. 누구도 현장의 위험을 통제하지 않고, 누군가 다치거나 죽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다르다. 영국과 독일 같은 안전 선진국들은 소규모 공사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모든 건축주가 ‘CDM 규정(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에 따라 위험 요소를 사전에 식별하고 이를 통제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공사 기간이 30일 이상이거나 동시에 5인 이상이 투입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건설단계 안전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며, 철거작업과 같은 고위험 작업은 별도로 위험성평가서를 제출해야 한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BG BAU’라는 전문기관이 건설공사 전반을 감독하며, 공사의 규모와 관계 없이 사전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자가 한 명뿐인 작업일지라도 위험요소가 있다면 체크리스트와 작업지침서를 사전에 작성해야 한다.
건축주는 물론, 현장 책임자도 반드시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렇듯 소규모 공사라 해도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는 단 한 치의 예외도 두지 않는다.
우리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매년 수많은 소규모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작은 공사니까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안전은 공사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어떤 현장이든 사람이 일하는 곳이라면, 그만큼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
공사규모에 관계 없이 산업안전보건법 제16조에 따른 관리감독자를 지정하고 배치해야 한다. 또한 공사규모에 관계 없이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이에 따른 안전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작업자에 대해서도 작업 전 10분 안전교육을 생활화해야 한다.
정부(고용노동부) 및 지방자치단체는 소규모 공사 현장의 특성을 감안한 안전정책을 추진하고 재정지원 등을 확대해야 한다. ‘개구부 덮개, 안전난간, 경고표지’가 포함된 간이형 안전 키트를 무상 대여하거나 저렴하게 보급할 수도 있다. 작고 간단한 조치 하나가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너무 늦게 깨닫고 있다.
작은 공사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약속이며, 생존을 위한 조건이다. 오늘 울산에서 일어난 사고가, 내일은 어디서든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심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