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ESG 경영의 확대,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 산업안전을 둘러싼 사회적 기대와 기준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제 안전은 단순한 규제가 아닌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산업현장은 수기 기록, 정기 순찰, 육안 감시 같은 전통적 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는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거나 차단하기보다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대응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2024년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 사망자는 589명(553건)에 이르고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수조 원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안전의 패러다임은 ‘사후 수습’에서 ‘사전 예방’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인공지능(AI) 기술이 있다.
AI는 산업안전의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 먼저, 실시간 위험 감지에서는 컴퓨터 비전 기반 시스템이 영상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분석해 유출, 장애물, 장비 이상 등을 즉시 식별하고 경고함으로써 사고를 예방한다. 실제 화학 공장에서 AI 시스템이 유해물질 유출을 조기에 탐지해 미끄러짐 사고를 방지한 사례가 있다. 일부 시범 연구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작업장 사고를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결과도 나타났다.
개인보호장비(PPE) 착용 감지에서도 AI는 큰 역할을 한다.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해 보호 장비 미착용 여부를 자동으로 식별하고, 관리자에게 즉시 알림으로써 대규모 작업장에서도 일관된 안전기준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 OSHA(노동성 산하 직업안전위생국)는 PPE의 사용과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여러 연구에서도 PPE 착용 미준수 시 사고발생 가능성은 2~3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자세 분석과 RSI(반복성 긴장성 손상) 예방 분야에서도 AI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업자의 움직임과 자세를 모니터링하여 부적절한 리프팅이나 반복 동작을 감지하고, 실시간 피드백이나 교육을 제공한다.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 특히 포장 및 물류 산업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예측정비 역시 AI 기술의 핵심 응용 분야다. 장비의 진동과 소음, 온도 등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이상 징후를 사전에 탐지, 정비를 유도함으로써 설비 사고를 예방한다. 맥킨지보고서에 따르면 예측정비 기술은 장비의 가동중단 시간을 최대 50%까지 줄이고 수명을 최대 40%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처럼 AI 기술은 산업안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혁신적 도구이지만, 기술만으로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이해하고 설계하며, 현장에 적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의 역량이다. 그리고 그 인재를 길러내는 중심에 대학이 있다. 대학은 산업안전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할 핵심 인재 양성의 중심이 돼야 한다. 정부 역시 이에 발맞춰 AI, 반도체, 메타버스 등 첨단 기술 분야의 석·박사급 고급 인재 양성은 물론 산학 프로젝트와 실무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인공지능’ ‘지능형 제조’ ‘지속가능한 제조환경’ 등 특화 트랙 지원을 확대하는 추세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 대학의 교육과정은 여전히 전통적인 안전공학 이론 중심에 머물러 있으며, AI 기반 위험 감지, 스마트 센서 운용, 데이터 기반 사고 예측 등 현장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기술 교육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제 대학은 이러한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AI 기반 산업안전 교육과정을 필수화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론을 넘어,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한 위기 대응 훈련, AI 분석 결과의 해석 및 판단, 산업현장과 연계된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를 통해 실질적인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교수자 또한 산업 기술의 흐름을 반영한 교육 역량을 갖추고, 산학 협력을 통해 교육 내용을 현장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나아가 대학은 지역 내 지자체, 공공기관과 연계하여 산업안전 교육의 허브이자 기술 확산의 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AI를 산업안전에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다. 이는 사람 중심의 안전문화로 전환하는 본질적인 변화이며, 생명을 지키는 체계를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 도구를 활용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야말로, 지금 대학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임이다.
박영희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AI산업안전시스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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