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기후 위기 시대와 십리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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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기후 위기 시대와 십리대숲
  • 경상일보
  • 승인 2025.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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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일 울산시의회 의원

어제도 오늘도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서 남산을 거쳐 태화강국가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유유히 흐르는 태화강을 끼고 도는 산책길은 언제나 편안하고 평화롭다. 울산을 병풍처럼 둘러싼 먼 산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 든다. 물속을 이리저리 유영하는 물고기의 분주함을 보는 광경도 흥미롭고, 하늘을 유유자적 비행하는 새들의 날갯짓을 보는 풍경도 재미있다. 새의 지저귐은 귀를 즐겁게 하고,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한다. 높낮이의 진폭에 따라 심장도 쿵쿵거리다 콩콩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의 소리는 낮고 넓게 울려 퍼져 멀리 있어도 마치 곁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도심 속 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대숲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울산 사람으로서 언제나 축복이고 행복이다. 그런데, 존재의 운명인지 공간의 숙명인지, 십리대숲은 하천부지 한 가운데 있어 물에 취약하다. 해마다 수해의 피해를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해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 수년 전에도 십리대숲은 초토화됐었다. 그동안 피해가 한두 번도 아닐 텐데 여태껏 원형에 큰 변화가 없는 것만도 대단하다.

수마가 할퀴고 간 십리대숲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한꺼번에 몰아친 수압을 버텨내지 못한 대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뒹굴었고, 처참하게 쓰러졌다. 황토색 흙탕물을 뒤집어쓴 대나무는 볼품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몇 날 며칠의 청소와 정리를 통해 초록의 대나무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은 상당했다. 물길을 완전히 돌리지 않는 한 십리대숲은 수재를 피할 신의 한 수가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비가 많이 내리면 대책 없이 마음만 바빠진다. 혹여, 기상 전망에서 비가 잦고 많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면 십리대숲을 바라보는 감정은 조바심을 동반해서 더 복잡해진다.

하늘의 조화(造化)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미 우리는 기상이변에서 이상기후를 거쳐 기후 위기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과거의 경험과 자료, 지식을 맹신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기후 위기는 곧 지구의 위기이고, 인류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극지방의 빙하는 하염없이 녹아내리고 있고, 바닷물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지진과 화산, 폭염과 폭우, 한파는 일상사가 됐다. 하루 만에 일 년 치 강우량을 기록했다는 뉴스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닐 정도다.

우리나라도 기후 위기로 과일 재배 한계선이 점점 북상하고 있다. 제주의 한라봉은 경북과 전북까지, 청도의 복숭아는 경기도까지 올라왔다. 경북의 사과는 강원도가 대표 생산지가 될 정도로 바뀌고 있다. 과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족 자원도 바다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지역별 대표 어종이 변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그리고 한정된 공간에, 폭발적으로 퍼붓는 강우의 행태가 빈발하는 기후 위기 시대에 십리대숲이 훼손을 피하고 보전될 수 있을까?

필자가 새벽마다 십리대숲을 찾아 바라보며 고민하는 지점이다. 어쩌다 한번 돌연변이처럼 나타났던 기상이변의 시대도 견뎌왔는데, 기후 위기 시대라고 버텨내지 못할까라고 필자의 걱정을 기우(杞憂)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기우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러나, 이변과 위기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문제의 진단과 해결도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꿀벌이 점차 사라지는 등 기후 위기는 멸종의 시대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십리대숲이라고 안전할까라는 생각에 이르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오늘도 내일 새벽에도 십리대숲으로 향하겠지만, 갈수록 발걸음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이번 장마에도, 다가올 태풍에도 십리대숲이 큰 피해 없이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다. 조금 더 항구적인 보전대책이 나오길 필자도 더 공부하고 연구해 볼 생각이다.

안수일 울산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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