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백성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도성인 한양에서는 백성들이 굶주림에 지쳐서 죽은 시체의 살을 남김없이 발라먹는 바람에 시체들이 뼈만 앙상한 백골로 남아있고, 이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형제들까지도 서로 잡아먹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흔한 일이라서 포졸들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양주 등에서는 굶주린 사람들이 도적 떼로 몰려다니면서 사람을 사냥해서 먹는데도 고을수령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가렴주구를 일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의 요청으로 왜군을 몰아내기 위해 이 땅에 들어온 명군이 저지르는 약탈과 부녀자 겁탈, 살인 행위로 인해 백성들은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4만 명이 넘는 명군에게 필요한 군량은 일 년에 48만 석이었으나 계속되는 전쟁과 가뭄으로 인해 조선의 조세수입은 30만 석도 채 되지 않아서 명군이 요구하는 군량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식량을 지원하였다. 명군은 모자라는 군량을 보충하기 위해서 조선 백성들을 살해하고 식량을 약탈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주상과 조정은 이를 소상히 알고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러한 명군의 패악은 왜군에 협력하는 부역자를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한 조선의 아리따운 처자들 중에는 살기 위해서 스스로 치마끈을 풀고 명군의 첩이 된 자가 있는데, 그 수효가 적지 않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면 거기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지금 조선의 백성들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무룡산의 동굴집은 박달나무로 출입구를 견고하게 만들어서 사람의 완력으로는 밀고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동굴 내부에 있는 한 호랑이 같은 짐승으로부터도 안전했다. 게다가 밖에서는 동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까지 해 놓았기 때문에 국화는 천동이 없어도 그다지 불안하지는 않았다.
동굴 바닥에는 커다란 옹기항아리가 일곱 개 묻혀 있었는데 각각의 항아리에는 쌀과 소금, 물, 장아찌(더덕, 도라지, 곰취, 산마늘 등)가 들어 있었다. 쌀과 물 항아리에 참나무 숯이 몇 개 들어있는 것 외에는 특이한 것은 없었다.
그가 떠난 지 며칠이 지나자 국화는 이내 무료해졌다. 같이 있을 때는 어색해서 다소 불편하기까지 했는데, 막상 그가 떠나자 왠지 허전했다. 두 사람 다 말수가 적어서 같이 있어도 적막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둘이 있으면 무료하지는 않았다. 혼자 나흘을 보내자 그녀는 속이 답답해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국화는 우선 누더기가 된 이불과 세 벌밖에 없는 누더기 옷부터 계곡으로 가져가서 빨았다. 11월의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손이 시린 것보다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게다가 대낮이지만 짐승들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글 : 지선환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