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령에는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산짐승을 쫓기 위해서 돌을 모아 놓은 곳이 있는데,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그곳을 신당이라고 불렀고, 이 신당의 돌들은 왜적과의 싸움에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군사의 수에서 윤홍명 장군의 의병군은 절대적인 열세였다. 우연히 무룡산 중턱에서 전투를 지켜보게 된 천동은 해 질 무렵 대방천에서 달령으로 오르는 왼쪽 능선의 중턱쯤에서 조심스럽게 적의 후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복면을 하지 않았다. 의병진영에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천동은 그들을 돕기 위해서 나섰다. 윤장군의 의병진영에서는 천동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항상 그래왔듯이 그는 혼자서 적의 후미를 따라 붙었다. 다행히 후미 쪽의 왜병들은 조총이 없었다. 천동은 상황 파악을 마친 후에 본격적으로 적을 베기 시작했다. 갑자기 후미에서 병사들이 쓰러지자 왜병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의병진영은 전투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고 한동안 수비에 치중하고 있었는데, 적의 낌새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챈 윤홍명 장군이 강궁을 쓰는 궁수들을 동원해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능선을 따라서 몸을 숨길 참호를 파고 매복해 있던 의병의 매복조들도 화살과 돌멩이를 이용하여 맹렬하게 공격하자, 전열이 흐트러진 왜병들은 허겁지겁 동해안 쪽으로 도망쳤다. 매의 눈을 가진 윤홍명 장군은 왜적의 무리 속에서 무명옷을 입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조선검으로 왜군들을 베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전투를 지휘해야 할 장수가 구경꾼마냥 적의 후미에서 일어나는 일만 주시할 수는 없었다. 한참을 적병과의 전투에 신경 쓰다가 다시 살펴보니 그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귀신에 홀렸나?”
“장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다. 그냥 혼잣말을 한 거야.”
윤장군을 모시는 부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에 천동은 윤홍명 장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군은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장군, 소인 양가 천동이라고 하옵니다. 인사드리옵니다.”
“너였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 너였어.”
“도련님 오랜만이옵니다.”
“그래, 벌써 그렇게 됐구나. 너는 그동안 무얼 하면서 지냈느냐? 거지 움막에서 사리진 이후로는 통 안 보이더군.”
“저 같은 천것이야 아무 곳이나 누우면 내 집이니 딱히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떠돌며 지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동안 너무도 많이 변한 거 같구나. 검술도 보통이 아니고, 눈에는 총기가 넘쳐서 모르는 사람들은 네가 백정의 자식인지 알아보기가 힘들겠어.”
“과찬의 말씀이옵니다.”
“그래, 검술은 언제 누구에게 배웠느냐?”
“저 혼자서 배우기는 했는데, 가르쳐 주는 스승이 없어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수준입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