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비가 찬찬히 빌딩을 닦고 있다.
가끔씩 내려오는 하늘 그림자는
언제나 투명하다
우리 모래 나라의 깃발도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다
투명하게 울고 있는 비
하늘 나라엔 레인 피플이 사는데요
그들은 너무 울고 울어서
결국 모두 사라지게 된대요
물이 다 빠지면 꼭 우리같이 생겼대요
우산을 치우고 잠시 올려다보면
저 멀리 롯데 호텔도
손을 들어 감은 머리를 빗어 내리고 있다
모래 기둥이 조금씩 무너져내려 길가에 쌓이면
투명한 그림자가
그것들을 쓸어내가고 있다
내 팔짱을 풀고 그가 운다.
밤비가 닦아 놓은
길 위에
눈물이 덜 마른 그가 잠깐 서 있다 사라진다
내가 찬찬히 닦여진다
마음속 슬픔·상처 씻어주는 가을비
 
올해는 유독 가을비가 잦다. 비. 비릿하고 비루하고 비애를 느끼게 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리는 비. 그쳤는가 하면 다시 내리고 멈췄는가 하면 다시 퍼붓는 아, 비감한 비.
하지만 비는 우리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슬픔을 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위 시도 그러한 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비는 빌딩을 투명하게, 모래 나라 깃발을 깨끗하게 씻으며 내린다. 혼탁하고 오염된 세상 곳곳이 비에 의해 깨끗하게 씻기고 정화된다. 비는 레인 피플의 눈물이다. 레인 피플은 울고 울어서 결국 비가 되어 사라지지만, 그러나 “물이 다 빠지면 꼭 우리같이 생겼대요”라면서 비의 외피를 벗고 우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멸을 통해 오히려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 우산을 내리고 비를 받아들인다. 비는 인간이 쌓아 올린 모래 기둥 같은 허상을 무너뜨리며 내린다. 그리고 마침내 비는 “나”를 닦아준다. 화자의 슬픔, 상처, 우울이 닦여지고 치유된다. 자신을 녹이고 허물어뜨리며 우리를 닦아주다 마침내 우리가 되는 레인 피플. 비.
어차피 맞을 비라면 비를 레인 피플의 부드러운 손이라 생각하면서, 연민의 눈물이라 생각하면서 맞기로 한다. 송은숙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