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5장 / 선조 의병장 김덕령을 친국하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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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5장 / 선조 의병장 김덕령을 친국하다(67)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10.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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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무룡산, 서생포성 일대에서는 왜군과 의병 등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서생포왜성에서 바라본 시가지 전경. 울산시 제공

꿈속에서조차 채 죽지도 않은 여인의 생살을 베어 먹는 장면이 보여서 그는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천동은 풍문으로 알고 있던 식인이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데 직접 식인 광경을 목격하고 나니, 부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가 서로 잡아먹는 부자부부상식(父子夫婦相食)도 어쩌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든 게 싫어졌다. 고향인 울산과 무룡산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며칠 뒤에 마침내 종오품 창신교위 이청국이 그를 불러서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천출이 어쩌다가 속량이 되고 양반이 되었다고 해서 다 같은 양반인 줄 알면 오산이다. 지금은 전란 중이라서 어쩔 수 없이 조정에서 너 같은 놈들을 면천시켜서 관직까지 주었지만 네놈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처신해라. 너 하나 의금부로 보내서 세상 하직하게 만드는 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가능하면 사직하고 네 고향으로 내려가거라. 그도 아니면 속오군으로 가거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이니라. 알아들었으면 가봐.”

부친이 당상관을 지낸 양반 사대부 출신의 직속상관은 그에게 노골적으로 사직을 종용했다.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면 스스로 가겠다고 말했을 터인데, 그도 사람인지라 막상 가라고 하니까 반발심이 생겼다. 그러나 사흘을 꼼짝도 하지 않고 숙소에 있던 천동은 마침내 속오군으로 전출에 동의하고 대구로 내려갔다.

양반과 천민이 모두 군사로 편제되어 있는 속오군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양반 댁의 종으로 있다가 온 자들은 양반의 자제들처럼 천동을 은근히 무시하며 그의 영을 듣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초급 군관들은 물론 종들까지 통솔이 제대로 되지 않자 그는 교위에게 불려가서 강제로 사직서에 수결하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가 관직을 제수 받고 부임한 지 불과 한 달 보름만의 일이었다. 그의 과거가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면천된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양반이었으나 그를 양반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없기에 지역에 내려와서도 지역 토호들에게 외면당하고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부딪힌 현실의 벽이었다. 그것은 실로 높고 견고했다. 그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깨트릴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었다.

-보부상 서신 8호-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596년 7월6일(음력)에 이몽학의 난이 일어났다. 주상이 즉위하고 일어난 민란 중에서 가장 큰 난이다. 모사재인이요 성사재천이라 했던가? 불같이 일어난 반란군은 바람같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부족한 조직력과 반란군 지도자의 우유부단한 결단력 때문에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 아직까지 조선의 하늘은 주상의 편이었다. 난의 주모자와 연루자들이 대거 연행되었다. 또다시 권신들에 의한 피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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