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정철의 광기가 일천여 명의 인명을 구천으로 보냈었는데 죽은 그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일까? 윤두수와 충청병사 이시언, 경상우병사 김응서 등은 충청도 관찰사의 종사관인 신경행의 거짓밀고를 기회로 익호장군 김덕령을 죽이려고 상소를 올렸다. 경상우감사 김수가 호시탐탐 죽일 기회를 노렸던 홍의장군 곽재우를 이몽학의 난과 관련된 자로 엮어서 장계를 올리니 곽재우, 최담년, 홍계남 등이 차례로 의금부로 잡혀 들어갔다. 이때에 역적으로 참수당한 양반가의 아녀자들 중에 곱상하게 생긴 여인들은 명나라 장수의 객고를 풀어주는 색노나 비변사를 장악한 권신들의 사노비가 되었다.
본관은 광산, 자는 경수(景樹)인 김덕령은 도원수 권율에게 잡혀서 진주감영에 감금되었다가 도성인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남도를 호령하던 익호장군 의병장 김덕령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선조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지막지한 고문이 계속되었다. 5000명의 의병을 거느린 김덕령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던 조선의 국왕은 죄 없는 그를 친국하며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주상은 서애 류성룡의 독대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류성룡은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어서 주상이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강녕전으로 향했다. 상선인 김새신이 강하게 류성룡의 발길을 막았으나 끝내 길을 열고야 말았다. 혼자서 술을 마시던 이연은 취한 눈으로 그런 류성룡을 바라봤다.
“내가 분명히 아무도 들지 말라고 일렀거늘 경은 내 말이 그렇게 우스운가?”
류성룡은 인사부터 올렸다.
“전하, 소인 류성룡이옵니다.”
“그래, 자네가 류성룡이지. 천하의 모든 놈들이 나를 무시해도 그대까지 나를 이리 대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전하,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주상전하께 긴히 주청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주청! 그래 무엇인가? 말해보게. 혹여 김덕령이 얘기는 아니겠지. 그 얘기라면 듣고 싶지 않네.”
“전하 김덕령은 충신이옵니다. 그는 왜적들과의 싸움에서 전공이 많은 공신이기도 합니다. 왜병들은 그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벌벌 떤다고 하옵니다. 왜적으로부터 조선의 강토를 지키려면 의병장 김덕령 같은 인재가 꼭 필요합니다.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심으로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왜병들이 벌벌 떤다고? 김덕령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자라면 그까짓 국문쯤은 견딜 것이오. 암, 그렇게 대단한 자가 며칠 국문을 당한다고 어찌되지는 않겠지. 죄가 없으면 끝내 죄를 토설치 않을 터, 그리되면 방면될 텐데 도대체 서애 그대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이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