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중공업그룹의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간 기업결합 심사신청에 대한 EU 집행위원회의 상세심사 결과가 지난달 발표되었다. 위원회는 두 기업 간 결합 결과 탄생할 단일기업이 선박, 특히 대형 LNG선 건조시장의 경쟁을 감소시키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갖게 될 것과, 이로 인해 EU 소비자들은 과거보다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될 것, 그리고 이것들이 결국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불허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본건 기업결합 승인신청을 불허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당사 기업들이 예비심사 결과 지적된 위원회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구제안(remedy)을 정식으로 제출하지 않은 것을 들었다. 불허 결정을 위한 단순한 명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2020년 12월 구글의 스마트워치 제조기업 핏빗(Fitbit) 인수 건에 대한 기업결합 심사에서 구글이 제출한 구제안이 위원회 승인 결정을 이끌어 낸 사례가 있었으므로 이는 단순한 절차 보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당시 위원회는 핏빗이 보유한 고객들의 건강 및 운동 정보를 구글이 독점하게 될 것을 우려했는데, 이에 대해 구글은 핏빗 인수 후 10년간 해당 정보를 별도 분리 보관하고(이른바 ‘data silo’) 구글의 광고 사업에 사용하지 않을 것임과, 고객 동의하에 다른 기업들이 해당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대가를 조건으로 판매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고, 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본건의 경우 시장지배력의 평가방법을 비롯해 위원회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소명이 심사과정에서 실제로는 있었으나, 심사 승인과 구제안 제출 간 이익 형량 결과 위원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구제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기업결합의 실익을 사실상 포기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 현대중공업 측에서 구제안을 공식적으로 제출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는 감수된 결과라 하겠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본건 결정을 다툴 방법은 없는 것일까? EU 체제 내에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총 3종류의 법원들 가운데 유럽연합 보통법원(EGC, 정식 약칭은 CJEU)에 해당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보통법원은 EU기관의 위법한 처분이나 부작위로부터 EU 비회원국의 개인을 포함해 회원국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1989년 9월 설립된 행정법원이다.
과거 판례들 가운데 본건 관련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홍콩 씨케이 허치슨(CK Huchison)의 영국 오투(O2 UK, 스페인 텔레포니카(Telefonica)의 자회사이다) 인수 관련 불허결정 취소소송에 대한 2020년 5월 판례이다. 위 판례에서 보통법원은 기업결합 승인여부 결정 시 위원회에 고도의 입증책임이 있음을 전제한 뒤, 단순히 해당 기업인수로 인해 기존 시장참여자 간 경쟁 강도가 줄어든다는 사정만으로는 시장 내 효율적 경쟁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시장지배력 집중에 대한 강한 개연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못하였음을 이유로 취소 판결을 내렸다.
위 판례에 의할 경우, 본건 역시 위원회의 입증책임 이행정도에 따라 결정이 취소될 여지가 있다. 다만 당사 기업으로서는 단순한 제소가능성 뿐 아니라 절차진행에 소요될 시간과 비용 등을 종합해 소송 여부를 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위 판례의 경우 소송의 대상인 위원회 결정이 2016년 5월에 있었으므로 판결까지 무려 4년이 소요되었고, 본건 결정 전 있었던 독일 티센크루프와 인도 타타 스틸 간 합병 불허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은 2019년 8월에 제기돼 현재도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하면, 법적 관점에서의 권리구제는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업적 관점에서 그 실익이 높다고는 보기 어렵다.
결국 조선사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본건의 당초 목적은 대형 조선사 간 합병이 아닌, 관련 산업정책과 기업전략을 구체화하는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에 의해 달성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 합병 무산의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해관계인들의 합의가 뒷받침되는데 힘이 모이길 바란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