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산왜성 전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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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울산왜성 전투의 교훈
  • 경상일보
  • 승인 2022.03.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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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 울산MBC PD

울산 중구 학성공원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장수 가토 키요마사가 쌓은 왜성이 지금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인 1597년 12월, 도원수 권율과 명나라 장수 양호가 이끄는, 5만이 넘는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울산왜성을 공격한다. 이듬해 1월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옛 기록을 보면, 왜성을 거의 함락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12월24일 공격 때, 우리 유격대가 왜성의 1책(柵)과 2책을 돌파하고 마지막 3책을 거의 무너뜨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우리 진영의 누군가가 후퇴를 알리는 꽹과리를 치는 바람에 함락을 눈앞에 두고도 우리 군사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당시 군영에도 당파가 나뉘어 있어서 상대방 당파의 군사들이 공(功)을 세우는 것을 시기하여 꽹과리를 쳤던 것이다.

만약 우리 군사가 그 때 울산왜성을 함락시키고 성안에 있던 가토 키요마사의 목을 베었더라면 울산왜성 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뛰어 넘는, 임진왜란 제1대첩이 되었을 것이고 학성공원은 우리 민족 자부심의 현장으로 길이길이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망국의 당파싸움이 사라지지 않고 우리 눈앞에 여전히 존재함을 본다. 중차대하고 시급한 지역의 문제 앞에서 당(黨)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견이 갈라지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지역의 정치판을 보면서 과거 울산왜성 전투의 악몽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이젠 물 건너 가버린 혁신도시의 신세계백화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역 정치인들이 똘똘 뭉쳐 백화점 유치를 위해 한목소리를 냈더라면 백화점 입점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초의 약속을 저버리고 신세계 측이 오피스텔을 짓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대다수 지역 정치인들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나몰라라 했던 것 아닌가, 어떤 이는 한술 더 떠서 백화점 아니면 오피스텔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20년 동안 중심가에 오래된 백화점 2개뿐인 울산으로선 신세계백화점이 사실 절실했다. 부산 신세계백화점은 해운대 발전의 기폭제가 됐고 지난해 문을 연 대전 신세계백화점은 ‘노잼’도시 대전의 얼굴을 바꾸었을 정도다. 지역 정치권의 분열로 울산이 얼마나 큰 도시발전의 기회를 놓쳤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에너지 문제를 갖고도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를 두고 두 정당이 싸운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울산앞바다의 부유식 해상풍력 또한 한쪽에서는 열심히 하자고 하고 반대편 정치권은 냉랭하다. 그 와중에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시행되어 고준위 핵폐기물을 우리 지역의 원전 내에 보관하게 됐는데도 원전을 찬성하는 정치인조차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시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울산대 의대를 울산으로 이전하는 문제만 해도, 일부 정치인들이 울산대 제2병원 설립에 동조하면서 정작 의과대학 이전 논의는 수면 아래로 쑥 들어가 버렸다. 이것만이 아니다. 반구대 보존과 물 확보 문제, 울산공항 이전과 확장 문제, 또 메가시티 관련한 문제를 포함해 모든 지역의 현안을 두고 여야의 주장이 엇갈린다. 이러니 무슨 일인들 제대로 되겠는가,

울산과 등을 맞댄 부산 기장군의 동부산관광단지는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울산의 도시계획은 30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울산정치인들은 툭하면 그 이유를 그린벨트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산의 정치인들은 울산과 달랐다. 그들은 기장군의 그린벨트를 풀고자 여야의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국토부를 찾아가 줄기차게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했다. 10년 세월을 그렇게 공을 들인 결과, 이제 동부산관광단지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부산 정치인들은 이제는 가덕신공항 건설을 한목소리로 외치며 서부산 개발에 다시 공을 들이고 있다.

70개월 이상, 사람들이 울산을 떠나는 울산탈출 러시가 계속되고 있다. 왜 울산이 이 지경이 됐을까. 오늘의 우리가 세월을 거슬러 400여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과연 울산왜성을 함락할 수 있을까.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반복하게 된다.’ 딱 맞는 말이다.

이영훈 울산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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