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까마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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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까마귀 추억
  • 경상일보
  • 승인 2022.03.0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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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웅 전 울산여고 교장

세월이 갈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에 실감한다. 태화강 국가정원 일원에서 떼까마귀를 활용한 관광프로그램을 시범운영한다는 뉴스를 보고 어린시절 까마귀와 함께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외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전 7살까지 외할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외가에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큰 대밭이 있었다. 그 속에서의 놀던, 그 시절 그때가 그리워진다.

까마귀 무리는 겨울철이면 먹이를 찾아 나서는 낮을 제외하고는 대밭 주위에 머물러 있다. 그때를 기억하면 외롭게 서 있는 대나무보다 까마귀와 함께한 대나무 숲 자연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였었다.

먹을 것과 단백질 공급이 부족했던 그 당시에는 밤이면 외가 아저씨와 친구들이 어울려 까마귀 포획에 나서곤 했다. 전등과 긴 마당 빗자루를 들고 대밭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대나무 바닥의 배설물의 촉감으로 확인했다. 배설물이 말랑말랑하면 분명 까마귀가 그 대나무에 앉아 있었다. 둘이서 대나무를 힘껏 흔들면 까마귀가 푸드덕거리며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지고 , 그때 빗자루로 덮어 잡았다.

무와 파, 쌀을 넣어 까마귀 온밥을 끓여 야식을 즐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그 온밥 맛은 지금의 어느 음식 맛에도 비교할 수 없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언제 다시 이런 추억을 재현할 수 있을지? 태화강 국가 정원을 탐방하면서 꼭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까마귀가 먹이를 찾아나서는 낮 동안 대밭은 개구쟁이 친구들의 놀이터이다. 죽어있는 까마귀를 주워오기도 하고, 대밭에서 놀고 있는 이웃집 닭들을 잡으려고 쫓아다니다 무릎을 크게 다치기도 했다. 지금 그 개구쟁이들은 마음만 남겨두고 이미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은 까마귀하면 불길한 철새로 생각하지만 어릴 적 추억 때문인지 까마귀가 지금도 정겹기만 하다.

해마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까마귀는 썩은 동물이나 물고기, 쥐, 과일 등을 먹는다. 번식이 끝나면 집단을 만들어 대나무가 있는 휴식처와 채식지역을 정하여 조석으로 왕복한다.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지만 영리한 새여서, 방제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태화강 십리대밭 주위도 까마귀 배설물로 오래전부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철새인 까마귀와 청둥오리 등의 배설물에서 나왔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대자연이 우리에게 재앙을 준비하고 있지나 않은지 좀 불안한 마음이다. 우리 울산지역의 철새에게서는 이러한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까마귀를 활용한 관광프로그램을 시범운영한다는 이때에 울산시 당국과 시민 모두는 이 문제를 예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먼저 십리대밭을 중심으로 한 생태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환경오염 등의 영향으로 어릴적 아름다운 추억과 향수가 하나씩 사라질까 안타깝다.

이동웅 전 울산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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