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맞지.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데 안 한 거지.” 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주민직선제 도입과 관련해서 사단법인 울산온양읍주민협의회 창립 발기인 대표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일순간 침묵이 이어졌다. 이후 회의에 참석한 발기인 모두 동의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원전이 가동되는 다른 지역에서는 정관에서 규정하고 있는 절차를 생략한 채 일부 세력들이 임의로 대의원들을 선출했다. 그 대의원들이 임원들을 선출하고, 주요 의사결정을 해왔다. 주민들의 목숨값을 두고 짬짬이가 가능한 구조다. 원전 측도 이 구조에서 일부 세력만 챙기고 관리하면 된다. 반면 온양읍 주민들은 이런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주민직선제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원전이 가동되는 지역은 우리나라에 5곳이 있다. 울산 울주군을 포함해서 부산 기장군, 경북 경주시, 경북 울진군, 전남 영광군에서 원전이 가동된다. 각 지역별로 주민협의회를 통해 원전지원금 관련 협의를 진행하거나 사업계획을 수립해서 예산을 집행한다. 울주군 같은 경우 원전과 근접한 서생면 전체와 온양읍 일부 3개 마을만 해당됐지만 지역 주민들의 오랜 노력으로 43개 마을 전체가 원전 주변지역이라는 답변(산업통상자원부)을 받아냈다.
발기인 회의에서 결정한 주민직선제는 임원 선출 권한을 대의원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행사하는 자치제도다. 주민직선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임원·대의원 탄핵제도 함께 도입한다. 이를 통해 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민대표성 논란을 차단하고, 주민들의 참여권과 결정권을 보장하게 된다. 주민직선제 도입을 결정하자 회의 속도가 빨라졌다. 전국 최초로 도입하는 만큼 다른 지역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가 모델을 만들어야 했다.
일단 절차적 정당성과 주민참여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회원을 공개모집하기로 했다. 마을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온양읍 행정복지센터에 협조를 구해서 홈페이지에 회원가입 안내문을 올렸다. 한 방송국 기자가 관심을 보이면서 이 과정이 뉴스에 나가기도 했다. 행정복지센터 마당에 회원가입 신청 부스를 설치하자 주민들이 다가와서 “뉴스 봤다. 주민직선제 도입 참 잘했다”라는 기대와 응원을 전했다. 아이 손을 잡고 찾아온 엄마도 “그 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쓸 수 있는 거죠?”라고 물어본 후 회원가입 신청서 한 뭉치를 들고 갔다. 집행부는 여전히 이 과정을 모르는 주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만2000여 전체 세대에 안내 전단지를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모집한 회원들이 마을총회를 통해 대의원과 임원진을 직접 선출하게 된다. 주요 사업계획과 운영예산도 주민들이 결정한다. 마을총회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원전지원금 배정과 사용 권한에 있어 최종적으로 주민들이 결정하는 토대다. 마을총회는 43개 마을을 5~6개 지역구로 묶어서 순회하며 개최할 예정이다. 이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서생면주민협의회도 회장 선출부터 주민직선제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여기. 온양읍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 마을혁신과 주민자치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이승진 울산민관협치지원센터 마을혁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