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여곡절 끝에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정권이 교체됐다. 국민들의 절반 정도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또 다른 절반은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 있다. 안도하는 국민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이 곧 등장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되고, 한탄하는 국민들도 머지않아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필요가 없다. 두 달 후 새로운 정권이 등장해도 대부분의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권교체기에 민감한 정치인이나 권력지향적인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일반시민들은 예전과 별다른 차이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게 될 것이다.
선거를 통한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주기적으로 정권이 변경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선거는, 기존 정권을 평가 또는 심판하고 또 미래에 필요한 정부를 선택하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선거결과는 항상 기존 정권에 대한 평가와 심판은 분명히 드러내지만 미래의 유토피아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선택된 정부가 5년 동안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흑색선전과 상호비방이 난무하는 역대 최악의 선거로 평가됐다. 각 후보들이 많은 공약을 제시했지만, 아마 공약을 보고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제시한 공약들은 앞으로 5년 동안 정부의 공식적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번 선거결과가 역대급 초박빙이었기 때문에, 집권세력이 공약을 정책으로 채택하는 경우, 반대표를 던졌던 유권자들은 그리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새로운 집권세력의 공약과 정책이, 바람직하고(desirable) 실현가능한가(feasible)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 남녀 간에 의견이 다르고, 부동산 정책도 집 소유자와 미소유자 간의 이해관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이 공약을 근거로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이번 선거에서 심판받은 기존 정부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일 새 정부의 공약이 우리의 미래 유토피아를 완전히 보장해 주는 것이라면 ‘공약의 정책화’를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하는 절대적인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전쟁과 영토 확장에 골몰하는 국왕과 국민에 봉사하지 않는 공직자들을 비판하며 이상적인 국가,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지금으로 치면 ‘공동생산, 공동분배’ 사회와 유사하다. 물론 모어 스스로도 이런 국가가 존재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그리스어에서 ‘아니다, 없다’를 뜻하는 ‘우’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가 합쳐진 단어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상적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물며 새 정권의 공약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국민 모두가 동의하는 이상적인 정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심각한 고려 없이 마구 쏟아낸 공약들도 적지 않고, 승부도 초박빙이었던 만큼, 자기 공약이 절대적으로 유토피아를 보장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유토피아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자세일 것이다.
결국 유토피아는 다수 국민들이 동의하고 지지하는 정책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역대 선거 중 ‘가장 많은 국민들의 반대’ 속에서 등장한 새 정부는 무엇보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들을 수렴하는 소통과 설득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법률개정, 예산조정 등 중요한 정책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인 만큼 절대 다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야당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지한 국민과 반대한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영역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