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다시, 유가 100달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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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다시, 유가 100달러 시대
  • 경상일보
  • 승인 2022.03.2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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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WTI유 기준 배럴당 국제유가가 3월2일 부로 세 자릿수로 들어섰다(NYMEX 종가 기준).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속도다. 2000년대 처음으로 100달러대에 진입했던 2008년에 75달러에서 100달러대로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이 7개월이었다면, 이번에는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단숨에 돌파했다’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연초 골드만 삭스는 브렌트유 기준 100달러대 도달 시점을 올해 3분기로 전망했는데, 실제 이 거래가에 도달하는 데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유가 상승세는 전문기관들의 전망이 무색할 만큼 그 기세가 가파르다.

다시 도래한 고유가 시대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한 방법으로, 국제유가의 등락을 일상에서 가장 쉽게 실감할 수 있는 주유소 판매가격이 있다. 우리가 보통 기름값이라고 부르는 유류 소매가는 석유제품 공급계약에 따라 정유사가 판매하는 석유제품 가격에 주유소의 유통비용, 판매이윤과 유류세, 부가가치세가 더해진 것이다. 가격 구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수요공급·계약조건을 포함한 시장원리 외에 유류세, 유가보조금, 알뜰주유소와 같은 정부 정책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관련 정부 정책은 논외로 하고, 국내를 전제로 시장요인 가운데 유류 소매가의 가격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 원유가의 등락은 뜻밖에도 그 연혁이 길지 않다. 지금은 그 영향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국제 원유가의 등락은 정부가 원유가·환율과 국내 유가를 연동하는 유가 연동제를 1994년 2월 시행함으로써 비로소 직접원인으로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동 제도시행 이후에도 정부가 각 유통단계별로 통제하던 석유제품 가격은 다음해 9월 석유산업자유화계획 수립 이후 1997년 1월 석유제품 유통단계별 최고가격 고시제도가 폐지됨으로써 비로소 전면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국제유가를 주요 경제지표로 보는 요즘의 인식은 생각만큼 오래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급등하는 국제유가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주유소의 기름값을 보고 정유사의 폭리를 비난하는 소비자 정서가 있으나, 산업·사업 측면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면 그 원인을 정유사의 이윤극대화만으로 단순화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석유화학·윤활유 부문을 제외한 정유사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정유사의 수익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재고자산 평가이익과 정제마진에 의해 인식되는데, 이 가운데 수익의 핵심 지표가 되는 정제마진은 정유사의 통제 밖에 있으며 예측 불가한 변동성을 갖는다. 통상 배럴당 4달러가 정제마진의 손익분기점이 되지만 지금과 같은 고유가 지속은 수요를 위축시키고 원자재 비용부담을 증가시켜 정제마진을 축소시키는 위험을 수반한다. 여기에 원유를 수입하는데 지불수단으로 사용되는 미 달러와 관련한 환리스크가 더해진다. 올해 1분기 싱가폴 복합정제마진(GRM, 스팟 기준)은 배럴당 12.0달러로 전 분기 대비 상승했으나, 이것의 지속여부는 무수한 정치·경제적 변수들에 가려져 있다. 정유사는 고유가 시대의 일방적 수혜자가 아니며, 국제유가의 변동성이라는 리스크에 노출된 수많은 기업들 가운데 예외가 아니다.

1964년 4월 고사동에 대한석유공사 제1석유공장(현 SK에너지 울산CLX)이 준공되고, 1980년 4월 온산읍에 한이석유 정유공장(현 S-Oil 온산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이래, 산업수도 울산의 위상에는 한국 정유산업의 시작과 성장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개인적인 이유이겠으나, 이것이 고유가와 연관산업·기업의 수익성 훼손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국제유가는 어떻게 될까. 이달 초 제이피 모건은 러시아 원유수출 제재 유지를 전제로 185달러를(브렌트유 기준),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최악의 경우 200달러를 전망했다. 16일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은 올해 2분기 전망을 112달러로 발표했고, 전날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코로나 봉쇄령과 OPEC 증산을 이유로 원유시장의 약세장(bear market) 진입을 보도했다. 권위 있는 기관들의 엇갈린 전망들이 난무할 만큼 깊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도래한 유가 100달러 시대의 한 의미일 것이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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