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23일)는 현대중공업의 전신인 현대조선이 1972년 3월23일 울산 동구 미포만에 현대울산조선소 기공식을 개최한 지 꼭 50주년이 된 날이다.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1972년 울산 미포만 백사장 흑백 사진과 50만분의 1짜리 지도, 빌린 26만t급 유조선 도면만 갖고 선박을 수주, 2년3개월이라는 최단시일에 조선소 건설과 동시에 유조선 2척을 건조해낸 세계 조선사에 전무후무한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당시 500원권 지폐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며 해외 투자자를 설득했다는 스토리텔링도 있다.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울산의 산단에는 우리나라 굴지 기업들의 성장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울산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장수기업으로 등재된 삼양사 울산공장은 1955년 갯벌과 바다를 매립하는 대역사끝에 건립됐다. 현대차 울산공장도 갯벌에 45m 깊이의 파일을 박는 난공사 끝에 단일공장으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사업장을 조성했다.
삼성SDI 울산사업장은 고지대를 평탄작업해 공장을 짓다보니 용수 및 전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LX하우시스 울산공장은 습지대에 지어져 직원들이 발이 푹푹 빠지는 논을 지나 일터로 들어가야 했다. 동부하이텍 울산비료공장은 식량자급자족을 위해 건립됐다.
국내 산단의 중심이자 종가사업장으로 대접받고 있는 울산공장에 대한 기업들의 애정도 깊다. SK이노베이션 울산CLX 설립 60주년을 기념해 지난 21일 울산CLX를 방문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울산CLX가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의 에너지 심장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심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처럼 60년을 대한민국 산업수도이자 발전사의 중심이었던 울산이지만 기념할 만한 변변한 시설 하나 없다. 정부의 무관심이 크다. 부자도시라며 막대한 세금만 거둬갔지 찬밥 신세다. 광역시임에도 인구가 120만에도 미치지 못한 탓인듯 하다.
그렇다보니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의 국립산업기술박물관(국립산박) 울산 건립 공약(公約)에 관심이 더 간다. 하지만 전례를 봤을 때 대규모의 국립산박 건립이 쉽지만은 않다.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임에도 10년째 진척이 없는게 현실이다. 애초 정부 구상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립산박을 짓는 것이었다. 건축비만 4500억원 규모에 부지매입과 전시품 구입 등 모두 1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계획이 검토됐다. 하지만 입지가 서울이 아닌 울산으로 결정되면서 여러차례 쪼그라들다 못해 결국엔 백지화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산업부와 울산시가 국립산박 건립 재추진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 화두가 되고 있는 국토균형발전이란 명분도 갖췄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산업기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창조와 융합의 복합문화공간’이란 비전에 걸맞은 규모여야 한다. 윤 당선인은 도시 확장과 개발에 제약을 주는 ‘개발제한 해제 총량 확대’ 추진도 약속한 바 있다.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울산 맞춤형 공약이다. 규모의 국립산박 건립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속도도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윤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과제에 반영시킬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전에 보았듯이 공약 실천에 임기 5년은 길지가 않다. 국립산박 건립이 실현되기 위해선 허투루 보낼 시간이 없다. 특별법 제정,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면제 등 필요한 방안을 모두 강구해야 한다. 국립산박 유치를 위해 모았던 울산시민들의 열정을 다시 모아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직시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벅차다. 공해로 찌든 산업수도에서 생태산업도시로 상전벽해의 변화를 일궈낸 울산, 이곳에 대한민국 산업의 압축 성장사를 한눈에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세계인들이 찾는 국립산박이 있는 멀지 않은 미래를 상상해보자.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
신형욱 사회부장 겸 부국장 shin@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