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유레카!-‘쓸데없음’에서 ‘쓸모’를 발견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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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유레카!-‘쓸데없음’에서 ‘쓸모’를 발견하는 순간
  • 경상일보
  • 승인 2022.03.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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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울산시는 얼마 전, 타 지역 관광객 400명의 신청을 받아 소위 ‘운수대똥’ 이벤트를 한시적으로 시범 실시한 적이 있다. 우비를 착용하고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 배설물을 맞거나 태화강 국가정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면 근처의 상가에서 쓸 수 있는 소정의 쿠폰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창의적 발상으로 관광산업 활성화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조류독감 문제, 무차별한 배설로 인한 피해 주민들의 불편 호소 등, 이 이벤트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의견은 다양하지만 필자는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생각을 한다.

울산에는 폐기 대상에 해당하는 배설물을 인문학적, 생태학적 상상력을 가미함으로써 쓸모있는 보물로 만든다는 소식이 또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한 실험실은 수년 전부터 인분(人糞)을 한 번 배출할 때, 당시의 환산 가치 500원 상당의 ‘10꿀’로 지급하는 소위 ‘똥본위 화폐’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벌(Bee)이 꿀을 만들듯 배설물을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자연의 긍정적 순환 구상(Vision)을 담아 ‘비비(Beevi) 변기’를 설치하고 대변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함으로써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유의미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경제성이 높은 화학 비료의 개발로 인해 인분이나 동물의 배설물 사용이 뜸하지만 일찍이 재래식 농사법에는 이들 ‘거름’이 일정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TV 해외 투어 교양프로그램을 보면 소나 말, 야크 등의 배설물을 건조시켜 연료로 사용하는 나라도 있고 단열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소똥을 벽이나 지붕에 바르는 풍습도 있다.

연료 이외에도 동물의 배설물을 정제하여 기호 식품을 생산하는 예도 더러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소비하는 커피가 그 중심에 있다.

커피나무를 많이 재배하는 동남아지역에서 사향고양이 똥에서 추출하는 루왁(luwak) 커피나 시벳(civet) 커피, 사향족제비 똥을 이용한 위즐(weasel) 커피, 다람쥐 똥 커피 등을 생산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동물보호단체들은, 인간의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소화기관을 약하게 하는 유동식을 먹이며까지 좁은 철창에 갇힌 수만 마리의 사향고양이들을 혹사함으로써 커피 생산 기계처럼 취급하는 실상을 고발한 적도 있다.

블랙 아이보리 커피(black ivory coffee)는 코끼리 똥을 수거하여 제조한 것으로, 33㎏의 커피 열매를 먹으면 단 1㎏ 정도만 추출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 효율이 낮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코끼리 배설물로 종이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초식 동물인 코끼리 한 마리의 하루 배설량 50㎏ 중에서 10㎏의 섬유질을 추출 가공해 A4 용지 600장 정도 생산 가능하다고 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캥거루나 엘크, 물소 똥으로부터 친환경 종이를 생산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우리가 많이 접해본 마분지(馬糞紙) 역시 말똥을 재료로 하여 제작한 종이다.

이처럼 동물의 배설물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무조건 ‘쓸데없음’으로부터 ‘쓸모 있음’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세상에 당연히 존재하는 ‘쓸모 있음’에서 그 ‘쓸모’를 ‘발굴’해내는 건강한 상상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증(傍證)이 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의 소중함을 찾아내려는 자세는 늘 중요하다. 폐품을 수집하는 분들이 고물을 보물이라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듯이, 세상에는 절대 무의미하거나 하찮은 일이란 없으며 모든 것이 그 나름대로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는 집에서 멸치 맛국물을 우려낼 때 되도록 내장이나 똥을 제거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좀 쓴맛은 있으나 그래야만 온전한 바다의 맛, 싱싱한 플랑크톤의 살아있는 정신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욕조에서 부력(浮力)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가 거리로 뛰쳐나오며 외쳤던 ‘유레카!’. 그 발견의 미학을 경험하고 전율을 맛보는 일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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