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숙칼럼]민심 리터러시(Literacy)로 ‘0.73%포인트’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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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칼럼]민심 리터러시(Literacy)로 ‘0.73%포인트’ 극복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2.03.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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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지금까지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후보자가 아닌, 유권자로서 단지 투표만 했음에도 말이다. 기꺼이 표를 주고 싶은 후보가 없어서 차선을 선택하느라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선거 때마다 독자들에게도 도저히 안되겠다는 후보를 한명씩 지워나가는 방법을 권유해왔지만 이번 대선에선 지우기를 반복할 뿐 차선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부패와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후보들을 봐야 하는 것도 몹시 피곤했다. 기권을 선택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유권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기에 투표를 저버릴 수도 없다. 유권자가 ‘극한 직업’이라더니. 딱 맞는 말이다.

77.1%의 투표율에 48.56%의 지지율은 ‘극한 직업’ 유권자가 선택한 최선이다. 문재인 또는 이재명의 민주당이나 윤석열의 국민의힘 모두 국민의 절반이 지지하지 않는다. 역대 최다 표차라는 높은 지지율의 대통령과 국회 180석을 민주당에 주었더니 마냥 오만해져버린 권력에 국민들은 지쳤다. 그렇다고 방만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국민의힘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기도 싫었던 유권자들이 만들어낸 숫자가 바로 0.73%포인트다.

소수점까지 찍은 지지율 격차가 몹시 복잡미묘 해보이지만 국민의 메시지는 의외로 간결하다. ‘겸손한 권력’이다. 새삼스러운 요구도 아니다. 그동안 출발선에 선 수많은 권력들이 스스로 강조해왔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10일 대국민 당선인사에서 “겸손한 자세로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20여일, 민주당이나 문재인 대통령,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당선인이 보여준 태도는 겸손한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두고, 대통령과 당선인의 만남을 두고, 대치를 벌인 두 권력은 겸손 보다 오만에 더 가깝다.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현 정권이 당선인의 공약을 두고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집무실 이전 예산을 안 줄 권리는 그들에게 있다. 그러나 어차피 그들은 한달여 뒤엔 물러간다. 문제는 윤당선인의 황소고집이다. 통인동사무실을 사용할망정 청와대로는 못들어간다고 할 이유는 도대체 뭔가. “일단 청와대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윤당선인의 설명은 ‘시간을 두고 준비해서 옮기라’는 민심의 흐름과는 사뭇 다르다. 설령 안보공백이 1도 없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반 이상(53.8%, 한국리서치·KBS)이 취임에 맞춰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데 대해 반대한다고 하지 않는가. 리얼미터가 지속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당선인이 국정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3월 2주차 52.7%에서 3주차 49.2%로, 4주차 46%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집무실 이전에 대한 민심임에 틀림없다. 혹여 윤당선인이 민심난독증(民心難讀症)이 있다면 큰 일이다.

민심 난독증은 일리터러시(illiteracy·문맹)와 다름없다. 근래 새삼 알려지기 시작한 리터리시(literacy·문해력) 역량은 우리 정치권에서 특히 필요해 보인다. 문맹을 벗어나기 위해 글을 읽어야 했던 시절, 우리나라에선 리터러시를 단순히 문해력이라고 번역했지만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1997)는 일찌기 ‘단어읽기와 세상읽기’라는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설명했다. 조병영 한양대교수는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라는 책에서 “어떻게 읽고 쓰고 생각하고 대화하는지 분석하고 성찰하면 학교, 사회, 정치, 그리고 일상에서 불통된 현실의 문제들을 좀더 사려깊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치에서 ‘민심 리터러시’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0.73%포인트, 이 작은 숫자를 극복하고 큰 감동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새정부의 출발선도 바로 ‘민심 리터러시’다. 오만과 고집을 버리고 통합의 리더십으로 가는 길도 ‘민심 러터러시’에서 시작된다. 리터러시는 역지사지라고도 한다. 글은 물론이고 대상이 무엇이든 깊이 읽으면 공감대가 생긴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게 된다. 역지사지해서 권력가가 아닌 한명의 시민으로서 시민에게 필요한 관점, 역량, 태도 등을 비판적으로 읽고 쓰고 실천하는 ‘시민적 리터러시’까지 갖춘다면 분명 성공한 정부로 남을 수 있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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