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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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전쟁
  • 경상일보
  • 승인 2022.03.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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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린 소년병이 지원 입대하는 기사를 보았다. 우크라이나의 아버지와 아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전쟁을 겪었고 50년 전에는 머나먼 남의 땅에 참전한 적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고엽제 후유증,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아버지들을 남겼다. 이들의 가족이 겪어야했던 기나긴 고통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따이한에 의해 가족을 몰살당했다는 베트남인의 원망을 마주하며 전쟁의 길고긴 상흔을 느끼고 있다.

파월군인이 이제는 80여세에 이르거나 돌아가셨다. 지금도 불안증과 술 의존으로 오시는 분이 있다. 수시로 전쟁 당시의 참혹한 기억이 침투해오기에 고요한 날이 없는 그의 정신 상태이다. 술은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인데 수십 년간 금단증세로 입원해야했다. “내 옆의 동료가 민간인으로 가장한 베트콩의 폭탄에 몸이 갈라지는 것을 보면 눈이 뒤집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죽여야 했고 모든 곳이 다 전쟁터였어.” 평생 그 옆을 지켜주는 부인 덕분에 그는 살아 있는 것 같다.

이 퇴역군인은 돈 벌러 다녀온 것이지 무엇을 바라느냐는 사회의 냉대와 고엽제 후유증에 대한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분노와 불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음의 그림자에는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독선적인 아버지에 반항하는 아들은 어머니에겐 버티는 힘이었다. 아버지의 벌게진 눈을 끔찍이 싫어하던 아들은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후 집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아들은 자동차 판매사원을 하며 자신의 길을 열심히 달렸고 결혼해 아들도 얻었다. 얼마 전 어머니와 내원한 이 아들은 이젠 노쇠하고 기운이 없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40대 중년이었다. 그의 또 다른 걱정은 고1 아들이 사춘기 병을 앓는지 고집 세고 매사에 반항적인 것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에 순응하지 않고 친구들과 불화가 심하였다. 할머니 왈, “할아버지와 판박이 성격인기라. 마음먹는 것은 꼭 해야 하고 날선 눈빛으로 대들면 부모도 감당이 힘든미데이.”

치료를 받으며 아버지와 아들은 전쟁 같은 그 시기를 잘 넘기게 되었고 아이는 대학으로 진학하였다.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 본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하였다. 같이 온 세 조(祖), 부(父), 손(孫)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자동차 수리일을 했던 할아버지는 같은 일을 하려는 손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기특해하였고, 고루한 이야기임에도 잘 들어주며 할아버지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세상을 보여주는 거울이고 삶의 지표이다. 아버지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 노릇을 하기는 어렵다. 아버지는 세상살이에 가슴이 타버리고, 그 불티에 아내와 아들, 딸의 마음이 타버리는 위태한 삶을 산다. 사실 아버지란 존재는 아궁이의 불씨처럼 장작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집안을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이 아버지도 전쟁이 없었다면 그런 버팀목이 되어 아내가 화병이 나지 않고 아들이 뛰쳐나가지 않아도 되는 가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개성과 세계를 쫓아 뛰쳐나간 아들이 돌아와 부자관계는 완성되어야 한다. 남자가 외유내강의 멋진 성격으로 만들어지는데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중요한 테마이다. 이걸 얻지 못한 남자는 아버지와 불화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회에 불신과 공격성을 보인다. 가장 문제적 남자인 전쟁범죄자는 침략과 발포명령으로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짓밞고 황폐화시키는데, ‘블라디미르 푸틴’ 그는 부자무친(父子無親)일 것이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소주를 마신다, 아들이 따라준 술잔을 들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도하는 TV를 본다. “전쟁터에 가면 사람을 향해 총을 쏘고 죽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데이. 주검들과 그 피와 포성들이 두고두고 잊혀지지가 않는기라. 나는 비록 겪어버렸고 평생 후회하였지만, 이 땅에서만큼은 다시는 전쟁이 터지면 안된데이. 내 손자 손에 연장대신 총이 들리면 진짜 안 된다 아이가.”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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