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철학산책(38)]고급 쾌락 저급 쾌락
상태바
[김남호의 철학산책(38)]고급 쾌락 저급 쾌락
  • 경상일보
  • 승인 2022.04.04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

철학자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어릴 적 신동이었다. 세 살부터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학습에 몰두했다. 그의 아버지는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으로부터 공리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배웠다. ‘좋은 선택이란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선택’이라는 벤담의 생각은 이후 많은 문명권에서 대표적인 선택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벤담의 사상에서 이익은 곧 쾌락이었고, 심지어 어떤 선택이 어느 정도의 쾌락을 주는지 계산까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계승한 밀은 벤담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쾌락에도 고급과 저급이 있는데, 벤담이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정신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쾌감 역시 다를 거라는 생각이다. 자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기어가던 아기가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며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아이는 왜 넘어지고 울어도 계속 일어나려고 할까? 걷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어서, 그게 실현되면 자연스러운 쾌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인간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내재돼 있다면, 이 능력을 발휘하고 실현할 때 역시 쾌감을 느낄 것이다. 이 쾌감은 분명 주먹질을 하거나, 피를 튀기는 투견을 보거나, 타인을 짓밟으면서 느끼는 쾌락과는 다르다. 자신을 더 고귀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능력의 실현은 더 고차원적인 쾌감을 동반한다고 밀은 주장한다.

쾌락이 고급과 저급으로 구분될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늘 의견이 엇갈리고, 의견 차이는 잘 좁혀지지 않곤 한다. 두 종류의 쾌감이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 어려운 이유는 이 물음이 결국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당시 무인도였던 헬골란트에서 망망대해를 보며 고민한 끝에 ‘불확정성 원리’를 깨달았을 때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가 느꼈을 쾌감은 도박장에서 한 번 크게 돈을 딴 사람의 쾌감과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하이젠베르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문화에는 분명 모호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저급한 쾌락이 선호 받지도 않는다. 쾌락에도 고급과 저급이 있을까? 그전에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 꽃이 진다.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복효근 ‘목련 후기(後記)’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