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놔두세요, 그들도 한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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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놔두세요, 그들도 한국이야
  • 경상일보
  • 승인 2022.04.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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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준 울산혜인학교 학부모

#사례1. 여우가 두루미를 식사에 초대했다. 여우는 납작한 접시에 스프를 담아 내왔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스프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었다. 여우는 두루미가 먹지 못한 스프까지 싹싹 핥아먹었다. 화가 난 두루미는 며칠 후 여우를 초대했다. 두루미는 목이 긴 호리병에 고기를 담아 내왔고 여우는 먹을 수 없었다. 두루미는 여우의 고기까지 맛있게 먹어 치웠다.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중에서)

#사례2. 수능 국어영역의 문제지는 대략 20페이지 정도 된다. 시간은 80분.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역으로 된 국어 문제지가 대략 96페이지에서 100페이지. 시간은 80분의 1.7배인 136분이다. 손가락으로 점자를 더듬어서 글을 읽고, 더구나 그림이나 표로 된 지문도 모두 글로 풀어낸 내용으로 100페이지 가량 되는 내용의 지문과 문제를 일반인보다 0.7배 더 주는 시간내에 모두 해결해야 한다.

#사례3. 2년 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김예지 의원은 당선된 뒤 안내견 ‘조이’가 동물이란 이유로 국회의사당 출입이 금지된 적이 있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이러한 안내견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어 있지만, 법을 만드는 곳인 국회에서조차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국회 출입 가능 여부를 두고 한바탕 소동이 있던 터였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여러 사회적 논쟁과 이슈들에 대해서 중증장애인의 아빠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나의 경우를 가지고 일반화시키거나 그런 사례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쭙잖게 이 힘겨운 담론에 발을 담그고 싶지도 않지만 중증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내가 듣기에도 얄미울 정도로 최근 모 정당의 대표가 하는 말은 나무랄데없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역설적으로 그 분이 하는 말이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비단 나 뿐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차피 양 극단은 여유와 관용(톨레랑스)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서 매우 무미건조하고 차갑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더욱이 ‘합법’과 ‘불법’으로 재단된 법의 영역에서는 그 어떤 여유와 관용을 함부로 가져다 쓰기가 어렵기에 더욱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사실 위의 사례 1·2·3 모두 법의 영역에서는 저간의 합법적이고 이성적인 논거들을 댈 수 있으리라. 이런 이유로 주위에 호소할 기회나 방법, 그럴 힘조차 없이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마주치게 될 현실의 벽은 더욱 차갑고, 한 치의 여유없이 내뱉는 이성적인 외침은 매우 ‘폭력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우리사회가 더디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법과 제도가 계속적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음을 나 스스로도 매번 느끼고 있다. 하지만 막상 개별 현실에서 만나는 상황들은 그 속도가 더디고 정책을 실현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이 법과 합법의 이름으로 행하는 저항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느끼는 것보다는 몇 배로 크고 강할 때가 많아 나 스스로도 좌절할 때가 많이 있다.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운동을 한창 벌일때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스스로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책 역할을 했다. 당연히 프랑스 입장에서는 엄연한 반역 행위였다. 프랑스에서는 사르트르를 제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정치인이자 대통령 드골은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라고 했다. 사르트르의 행위조차 프랑스 그 자체로 수용하였다. 모 정당 대표님의 SNS에 올라온 글들은 ‘설득문’ 자체로서는 나도 100점을 주고 싶다. 글자 하나 틀린게 없이 조목조목 옳은 말씀들이다. 그러나 우연히 기회가 닿아 몇 번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던, 그리고 너무나 멋진 젊은 정치인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놔누세요. 그들도 한국이야”라는 말을 기대했던 나의 실수를 탓해야겠다.

최용준 울산혜인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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