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전 안 커디(Susan Ahn Cuddy)의 한국이름은 안수산(安繡山)이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큰따님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프랜시스 커디와 결혼했다. 2015년 향년 100세로 돌아가셨지만 사후에도 미국인들의 그녀를 기리는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왜일까? 그녀는 아시아계 여성 최초의 미 해군 장교이며,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의 이중 한계를 넘어선 ‘미국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안창호 선생이 일제 감시를 피해 미국에 거주하던 1915년 안수산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주립대 졸업 직후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그녀는 해군 입대를 자원했으나 반아시아 정서 때문에 입대를 거부당했다가 재도전하여 미국 여성 최초로 포격술 장교가 됐다. 그녀는 한국인의 정신을 간직한 미국인으로서 일본군을 꺾기 위해 해군에 지원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도산선생의 독립운동과 항일정신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미국 해군 역사상 첫 여성 장교가 됐다. 부서는 후방 지원부서가 아닌 전투병과를 자원했다. 그래야 유사시에 일본군과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독립군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해군 전투기 조종사 교관이었는데 한때 백인 전투기 조종사들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불복하였을 때, 그녀는 당당히 “(하늘이 아닌) 땅에선 내가 쏘라고 할 때 쏴야 한다”며 백인 남성 조종사들을 호통쳤다고 한다. 일제의 고문과 취조 중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부친 도산선생의 기개를 이어받은 것이다.
세계적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6년 안수산 여사 별세후 ‘미국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여성 영웅(Unsung Women of History)’으로 발굴 선정하기도 했다. <타임>은 선정 이유를 1)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한인 여성으로 처음 미 해군 장교가 되어 안수산은 소수인종과 여성차별을 이겨냈다. 2) 안수산은 일본과 싸우는 미국을 돕기 위해 자원입대를 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보였다. 3) 안수산은 어린 시절부터 한인 이민 1세대의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 등 독립운동을 보면서 자연스레 애국심을 키울 수 있었다. 4) 안수산은 LA시티칼리지 최초 아시안 농구선수, 아시안 최초 해군 여성장교, 국가안보국(NSA) 비밀정보 분석요원으로 활약한 불굴의 도전정신을 지닌 것으로 평가했다. 5) 안수산은 은퇴 후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했다.
인종차별을 주요전략으로 삼았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2018년 4월 포고문에서 아시아·태평양 미국인의 삶을 조명하면서 안수산 여사의 삶을 비중 있게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이민한 첫 한국인 부부(안창호 선생 부부)의 딸인 수전 안 커디는 큰 시련에 직면했을 때에도 강한 노동 윤리와 국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소명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통해 나라를 드높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2020년 미국 국무부는 도산의 장녀 안수산 여사를 공공외교 웹사이트에 ‘미국의 영웅’ ‘선구자’로 소개했다. 또한 미국 국방부는 2021년 5월 ‘아시아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미 해군의 첫 아시아계 여성 장교이자 최초의 여성 항공 포병 교관인 수전 안 여사를 대표적인 아시안으로 선정했다. 국방부는 웹사이트를 통해 안 여사가 독립운동가인 아버지를 도와 한국의 해방을 위해 애썼고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들이 나아갈 길을 닦는데도 기여했다고 밝혔다.
우리 해외동포 중에 이렇게 훌륭한 여성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큰 자랑이 된다. 자식은 부모를 닮아가며, 호랑이 집안에 호랑이 난다는 말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