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정의로운 재판만큼이나 중요한 ‘신속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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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정의로운 재판만큼이나 중요한 ‘신속한 재판’
  • 경상일보
  • 승인 2022.04.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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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필자가 처음 변호사를 시작한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갈수록 재판기록이 두꺼워지고 있다.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고 변호사 한 사람당 맡은 사건의 숫자가 줄어들다 보니, 사건 하나에 투입하는 시간이 늘어난 탓도 있다. 게다가 일반적인 교육수준의 향상과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의뢰인도 웬만큼은 사전지식을 가지고 사건의뢰를 하기 때문에, 돈을 받은 변호사가 대충 일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는 의뢰인의 모든 주장과 관련 자료를 가능한 한 일단 많이 제출하고 본다. 변호사들이 원래부터 늑장을 잘 부리는 속성을 가진데다가 제출해야 하는 양까지 많아지다 보니, 자꾸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판사들은 그런 방대해진 사건을 수백건씩 들고서 씨름을 한다. 거기에다 늘 해오던 뻔한 사건도 때로는 약자에게 너무 야박한 결과가 될까 봐 걱정을 하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건을 만나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을 거듭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 보니, 소장 제출 이후 판결을 받을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 일쑤다.

또 당사자 중에는 일부러 재판을 오래 끌려는 사람도 있다. 타인의 토지나 건물을 소유자에게 인도해 주어야 하는 세입자나 임차인은 가능한 한 시간을 끌고자 한다. 개발사업 부지 안에 토지나 건물을 소유한 사람은 사업자로부터 소송을 당하면 노골적으로 시간끌기를 한다. 시간에 쫓긴 사업자로부터 많은 합의금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형사재판에서도 중형이 예상되면 시간을 끌고자 한다. 빨리 재판을 마치고 빨리 중형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재판지연만을 목적으로,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재판지연의 주 원인은 변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재판은 이길 사람이 이겨야 하고 그것도 빨리 이겨야 한다. 재판을 질질 끌다가 이기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당사자나 변호사가 어떤 태도를 가졌든, 재판 진행은 판사가 하는 것이고, 재판을 지연하면 욕을 먹는 것도 법원이기 때문에, 법원은 신속한 재판을 목표로 세우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법원이 신속한 재판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이면 못 할 이유도 없다.

신속한 재판을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재판은 형사재판을 제외하고는 원고측의 소장 제출로 시작된다. 법원은 소장을 피고측에게 송달하고, 피고측이 답변서를 제출하면, 다시 원고측에게 반박서면을 내도록 하고, 이어서 원고측 반박서면에 대한 피고측의 반박서면을 내도록 한다. 그런 서면공방이 끝나면 법정에서 변론을 열어서 구두변론을 하고 증인신문 등 증거조사를 한다. 법정변론은 여러 차례 속행되기도 하고, 한 번 속행될 때마다 약 1개월 간격을 두고 진행된다. 그리고 변론이 끝나면 판결선고가 되고 재판은 끝이 난다.

만약 피고가 원고의 소장을 송달받고서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은 바로 판결선고절차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법원은 소장을 송달하면서 피고측에게 답변서를 1개월 이내에 제출하라고 한다. 그런데 법원은 자신의 명령과 달리 1개월이 지나도 판결선고기일을 잡지 않고 2개월 혹은 3개월씩 답변서 제출을 기다려 준다. 그것을 악용해 답변서 제출을 일부러 지연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이 굳이 그렇게 기다려 줄 이유가 없어 보인다. 또 원고측이나 피고측이 반박서면 제출을 늑장제출하면서 재판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 때에는 반박서면 없이 바로 법정 변론기일을 잡는 것도 신속한 재판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법정 변론기일을 잡아 놓으면 대개 그 이전에 반박서면을 내기 때문이다. 만약 법정 변론기일까지도 반박서면을 내지 않고 법정에 출석하면, 그 때에는 판사가 공개적으로 신속한 제출을 명령하면 된다.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 중 법원이 모르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위와 같은 언급을 하는 이유는, 최근 법원의 분위기 탓이다. 한 때 법원은 신속한 재판에 대해 대대적인 열의를 가지고 있었고, 집중심리제를 도입하면서 변호사들에게도 집중심리를 위한 협조를 누누이 당부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몰라도 현재는 그 때보다 열의가 없어진 것이 분명하다. 법원의 인사이동 후 새롭게 재판을 시작하는 이 때에, 신속한 재판도 정의로운 재판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해 보고자 한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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