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8)]오아시스 도시, 야즈드(Yazd)
상태바
[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8)]오아시스 도시, 야즈드(Yazd)
  • 경상일보
  • 승인 2022.04.15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흙으로 만들어진 도시 야즈드 골목길은 간혹 지붕으로 덮여 내부공간처럼 아늑하다.

이란 중부에는 ‘미친 사막’이라는 뜻의 루트(Lut) 사막이 있다. 2012년에 세상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선정될 만큼 폭염이 이글거리고 모래바람이 거센 황무지 사막이다. 토양은 소금기가 많고,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으니, 식물은커녕 박테리아조차 살 수 없는 땅으로 비유된다. 야즈드(Yazd)는 이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다. 이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에 오아시스 샘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막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오아시스 지역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간적 경계를 이룬다. 쫓기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피난과 은신의 장소가 된다. 7세기 무렵 아랍인들에 쫓긴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이 이곳으로 도피하여 정착했고, 13세기에는 징기스칸의 공격을 피해 온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다. 이들은 도시의 종교와 예술, 문명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도시는 대륙을 잇는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국과 터키, 인도를 오가는 실크로드 대상(Caraban)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길목이며 정류장이었다. 대상들이 몰려들면서 이 도시는 동서 문명의 교차로로 성장하게 된다. 페르시아인들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혹독한 환경을 아름답고 쾌적한 정주환경으로 개척했다. 13세기에 이곳을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도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상업의 중심지’라고 기록했다.

아무리 교통의 요지라도 물이 없다면 도시를 이룰 수 없다. 인구가 모여들면서 오아시스의 한정된 수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들은 먼 곳에 있는 산악지대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기적 같은 능력을 발휘했다. 이른바 카나트(Qanat)라는 지하수로의 건설이다. 수원지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우물을 파고, 지하에서 완만한 경사로 연결하여 물길을 만들었다. 집락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증발로 손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역사였다.

이란의 카나트는 사막기후에서 건설된 여러 지하수로의 기원으로 알려진다. 중국 신장지역에도 카레즈(Karez)라는 지하수로가 있는데, 이는 카나트의 페르시아어이다. 수백㎞에 달하는 지하 물길을 만들었던 인간의 경이적인 노력을 통해 불모지였던 사막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물론 고양이 눈물만큼 내리는 빗물도 모아 저장하는 장치(water cistern)도 발달했다. 수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시스템 또한 페르시아 문명의 찬란한 유산이다.

그 지하수로의 실체는 물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형으로 표현된 이 도시에서 지하를 연결하는 수로와 지하갱도, 물 저장소의 위치 등을 보여준다. 먼 설산으로부터 지하수로를 뚫어 이곳까지 물을 끌어왔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집 마다 우물이나 물 저장소를 만든 것이다. 도시 전체가 마치 상수관처럼 지하수로로 깔려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명하게 관리한 결과를 보여준다.

야즈드의 기원과 역사는 고대 페르시아로 올라가지만, 현재의 도시 경관은 중세 이슬람 왕조시대 이후에 형성된 것이다. 구시가는 아직도 이슬람 성곽도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야즈드는 흙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성곽과 건물들을 온통 흙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이 지역이 지극히 건조한 기후였기에 흙벽돌로 쌓은 성곽이 수 백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노란 황토색의 조소적인 성곽은 중동의 전통적, 풍토적 모습이다. 반원형으로 돌출된 치성과 성가퀴들 그리고 현안들이 성채의 위용보다는 순박한 풍토적 풍경을 그린다.

성안 마을로 들어선다. 시간이 200년 전에서 정체된 듯 전통적인 마을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넓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길은 점점 좁아지고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분기된다. 이슬람 중세도시의 전형적 가로경관이다. 길은 간혹 지붕으로 덮여 내부공간처럼 아늑하다. 지붕 덮인 길(sabat)은 뜨거운 햇빛과 모래바람을 막아준다. 아치들과 터널 위를 가로지르는 건물들, 그리고 볼트(vault) 천장을 통해 스며드는 은은한 빛들, 여인의 차도르처럼 닫힌 대문들, 가히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될만한 이슬람 중세도시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중심부로 향할수록 밀도가 높고 정돈된 도시적 체계를 볼 수 있다. 성곽 안에는 주택은 물론이거니와 모스크, 바자르, 대상숙소, 목욕탕, 학교 등의 도시 공동시설, 광장과 공원 등 외부공간을 갖춘 아름다운 도시가 나타난다. 황토색의 가로경관은 대문을 여는 순간 다채색의 생동감으로 변한다. 싱그러운 초목, 수조의 푸른 물, 그리고 모자이크 타일의 현란한 색상이 신기루와 같은 오아시스를 재현한다.

구시가의 중심부에 대 모스크(Jameh Mosque)가 자리한다. 중세 이슬람 도시의 중심시설이며 랜드마크다. 야즈드의 모스크는 특히 52m 달하는 장대한 탑으로 유명하다. 대문 양옆에 세운 두 개의 탑(minaret)이 하늘로 치솟는다. 신과 교감하는 안테나라고 할까. 첨두형 아치로 둘러싸인 내정의 고요함은 모자이크 타일로 현란하게 장식된 건물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실상 모스크는 아랍 정복자들이 이 땅에 들여온 것이다. 하지만 모스크를 고상하고 아름다운 건축으로 발전시킨 것은 페르시아 인들의 업적이다. 그들은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부터 발전시킨 파빌리온과 이반(ivan; 아치형 대문채), 정연한 아케이드 내정을 복합하여 품격있는 모스크 형식을 창안했다. 특히 다채색 스터코의 사용으로 황토 건축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혹독한 사막 지상의 도시(citivas mundi)안에 생명력이 넘치는 신의 도시(citivas Dei)를 구축한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