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方魚津을 魴魚津으로 원상복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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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方魚津을 魴魚津으로 원상복귀하자
  • 경상일보
  • 승인 2022.04.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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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학 전 울산과학대 교수 관광경영학 박사

방어진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목장이 방어진에 설치되면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방어진이란 공식적인 지명은 1469년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울산군편에 “군(郡) 동쪽 적진리(赤津里) 방어진(魴魚津) 목장에는 말이 360필, 목장의 둘레는 47리”라고 소개되어 최초로 등장했다.

이후 1471년 신숙주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에 삼포개항을 소개하면서 염포(鹽浦) 지도에 ‘방어진목장(魴魚津牧場)’을 표기하였고, 1530년(중종 25년) 이행(李荇) 등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증수하여 편찬한 인문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방어진(魴魚津)은 고을 동쪽 33리에 있으며, 목장(牧場)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방어진(魴魚津)이 공식적으로 표기되어 있다. 1722년 대마도종가문서에서도 조선의 목장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울산군(蔚山郡) 방어진(魴魚津)으로 소개하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방어진(魴魚津)이란 지명이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방어진(魴魚津)은 현재 울산 동구 일대를 일컬었으며, 산천(山川)과 같이 자연지형이 고유지명으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경상도속찬지리지>와 <울산부여지도신편읍지>에서 방어진(魴魚津)을 무리용산(無里龍山), 태화강(太和江), 동백도(冬栢島) 등과 같이 산천조에 포함시킨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방어진은 배산임수 지형과 온화한 날씨로 인해 국가의 목장지로서 적합한 곳이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진상마(進上馬)를 얻기 어려운데 울산(蔚山) 방어진목장(魴魚津牧場)의 말이 좋으니 장기(場基)를 퇴축(退築)하여 방목(放牧)하는 것이 마땅한 듯하고 퇴장(退場)은 내년에 거행할 것에 대해 논의함”이라는 대목에서 방어진에서 길러진 말의 우수함을 알 수 있다.

방어진(魴魚津)의 한자는 방어 방(魴), 고기 어(魚), 나루 진(津)으로서 그 뜻은 방어(魴魚)를 잡거나 나르는 나루터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지명 방어진(魴魚津)의 유래는 생선 방어(魴魚)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동해안에는 방어가 많이 잡혔고,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와 <울산부여지도신편읍지>에 울산의 토산품 중에 방어(魴魚)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 학자 요시다(吉田敬市)도 그의 저서 <조선수산개발사(朝鮮水産開發史)>에서 “방어진은 원래 ‘魴魚津’이었다”라고 기술했다.

1875년 운양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1876년에 체결된 불평등 강화도 조약에 의해 부산, 인천, 원산항을 개항하면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암묵적으로 시작되었다. 조선 내 영사관 등 일본 관공서 등이 작성한 문서에는 방어진(方魚津)으로 표기되었고,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방어진(方魚津)’이란 한자 지명이 공식화되었는데 결국 방어진(魴魚津)에서 방어진(方魚津)의 한자 지명 변화는 일제의 시각에서 비롯되었다. 즉 방어는 일본어로 부리(ぶり)라고 하고, 한자로는 ‘’라고 표기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한자이다. 반대로 일본에서 한자 ‘’은 방어라는 뜻도 아니고 다른 의미도 없다. 이와 같이 일본인이 방어진(魴魚津)의 지명을 처음 접했을 때 ‘방(魴)’자는 생소했을 것이다. 따라서 방어진(方魚津)은 그들이 잡은 어종을 일본으로 보내는 나루터라는 뜻으로 방(魴)자를 방(方)자로 고쳐 명명한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난지 80년 가까이 된다. 필자는 일제강점기 시절 순수한 건축물 등과 같은 유적이나 유물은 강제로 없애는 것보다 당시의 역사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일제의 잔재는 청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일제가 명명한 방어진 지명의 한자 ‘方魚津’을 ‘魴魚津’으로 원상복귀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한자를 바꾸면 행정적 기회비용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당국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만약 이렇게 바뀌게 된다면 전국에 방어진이 더욱 알려지게 되고, 방어진 지명에 대한 관광스토리텔링이 되어 관광객을 유혹할 것이다.

이정학 전 울산과학대 교수 관광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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