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만리장성과 울산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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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만리장성과 울산 앞바다
  • 경상일보
  • 승인 2022.04.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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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빈 강남동강병원 이사장

중국 명(明) 왕조는 몽골족 원(元)나라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1367년에 새로 나라를 세웠다. 나중에 이자성 반란에 망하고 청(淸) 왕조가 1644년에 들어섰다. 그동안 명나라는 북쪽에서 몽골족을 막았고, 남쪽에서 왜구와 싸웠다.

홍대용이 <을병연행록>,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썼을 때는 청 왕조가 들어선지 120년 이상 지났을 때다. 한족 남자들은 모두 변발을 하고 소매 좁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른바 ‘오랑캐’ 머리 모양과 옷차림이다. 홍대용, 박지원은 그걸 한탄스러워 하면서도 국방(國防) 부문에서 평화가 10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1766년 홍대용이 장성 일부가 무너진 것을 보수하지 않고 그냥 놔둔 것을 보고 현지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대답하는 말이, “성을 고치는 것은 반드시 나라 재물을 허비하고…장성 동쪽은 황상(皇上)의 본집인데 성을 고쳐 장차 누구를 막고자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1780년 박지원이 장성 중에 북경 북쪽에 있는 고북구(古北口)란 관문에 대해서 말하기를, “역사상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곳인데, 100년 넘게 전투가 없고 삼나무 뽕나무가 우거지고 닭과 개가 온데 돌아다닌다”고 했다. 청 왕조가 몽골과 통합하다시피 했고 멀리 서북쪽 오랑캐들과 싸워서 이기니까 장성에서 누구를 막을 필요가 없고 공사비를 쓰지 않는 것이다. 조선도 예전에 북쪽 여진족과 싸움이 있었지만, 병자호란 이후에는 북쪽 전선(戰線)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울산에 병영성(兵營城)이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부터 휴전선 쪽이 최전방이고 울산은 동남쪽 끝에 있어서 최후방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울산에 병영(兵營), 수영(水營)이 있었던 걸 보면, 옛날에는 오히려 최전방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병영성(兵營城)은 지금 보면 조그만해서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있던 곳으로, 나라 동남쪽을 가장 앞에서 지키는 군부대 본부 같은 것이었다. 조선 시대에 병마절도사가 있는 병영은 전국에 6개로, 경상도에는 좌우 2개가 있었다. 경상좌도란 것은 서울에서 볼 때 왼쪽에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경상우도 병영은 진주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 울산왜성(지금의 학성공원)에서는 가토 기요마사 군과 조선·명 연합군 사이에 큰 전투가 있기도 했다. 또 울산 개운포에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이 있었다. 줄여서 경상좌수영이라고 하는데, 해군 기지다. 울산이 500년 전에는 최전방이었는데 지금은 최후방이라고 생각되고, 온갖 생산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울산에서 군함을 본 적이 없다. 바다 동남쪽에서 일본군이 쳐들어올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내가 모르게 방어하고 있나? 진해에 해군이 있고 대구에 공군이 있으니까 거기서 운용해서 작전할수도 있겠다. 민간인으로서 군사작전을 잘 알 수는 없겠지만, 문득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봤다.

박원빈 강남동강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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