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건의 미래도시(4)]일본 식민지 지배와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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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건의 미래도시(4)]일본 식민지 지배와 울산
  • 경상일보
  • 승인 2022.04.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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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삼건 울산도시공사 사장 울산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 생활하고 있는 우리 도시공간은 조선시대까지 만들어진 가로망과 건축물을 토대로 일제강점기 때부터 새로 도입된 사회간접자본, 그리고 60년대 이후 본격적인 도시화 물결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가 남긴 대표적인 유산은 서울의 경우 고궁과 종묘, 일부 간선도로와 오래된 골목길 정도다. 울산은 중구의 경상좌병영성터와 북정동, 교동, 성남동, 옥교동 일대의 골목길과 동헌이다.

일제강점기 때 도입된 대표적인 건축·도시 관련 제도로는 1912년부터 시행된 ‘시구개정’, 1913년에 시행된 ‘시가지 건축물 취체규칙’, 그리고 1934년부터 시행된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있다. 이중에 시구개정은 주로 도로 개설의 근거가 되는 법령인데, 울산에서는 학성로, 중앙로, 동헌 앞 남북도로, 학성동 구 역전 연결도로(학산로), 장춘로에 속하는 복산성당에서 옛 동강목재 구간이 이 제도에 의해 개설되었다. 시가지건축물 취체규칙은 현재의 건축법과 이어지므로 일부 영향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도시계획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가지계획령은 울산의 경우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위에서 언급한 도로가 아니라고 해서 일제강점기의 유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울산에서 부산, 경주, 언양, 방어진 등을 잇는 간선도로와 현재의 동해선 철도 등도 대체로 일제강점기 때 결정된 노선을 따르고 있다. 특히 1910년대에 추진된 ‘조선토지조사사업’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지적도와 임야도, 토지대장, 임야대장, 지형도 등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현재 전국적으로 토지재조사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완료될 때까지는 100여년 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이들 공부(公簿)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울산에는 일제가 남긴 두 개의 큰 유산이 더 있다. 하나는 태화강 등의 제방이다. 태화교 부근에서 반구동을 지나 병영까지 돌아가는 태화강과 동천강 제방은 일제강점기때 울산수리조합 사업이 남긴 유산이다. 지금의 중구, 남구, 북구 일대 강변 저지대 거의 전역이 사업대상으로 면적이 수백만평이나 되었다. 강변 모래를 긁어모아서 제방(堤防)을 만들었는데, ‘대붓둑’이라는 말은 일본어 발음 ‘테보’와 우리 말 ‘둑’이 합쳐져서 생겼다. 태화루 맞은편 월진에는 펌프장이 만들어지고 이곳에서 이어지는 봇도랑이 혈관처럼 삼산들판을 적셨다. 이 물을 쓰는 농민들은 물세를 내야 했고, 강변 황무지는 옥토로 바뀌었지만 조선 농민이 수확의 절반을 내놓고 소작했다. 또 이 사업은 바닷길을 제방으로 막아서 울산이라는 포구도시를 평범한 농업도시로 바꾼 반면 방어진과 장생포, 방도, 서생 등지는 일본 어민과 정기선이 드나들면서 항구로 성장했다.

일제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은 울산을 ‘공업항, 연락항, 무역항, 어항, 공항’으로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구체적인 개발목적은 울산을 ‘일본제국의 전쟁승리를 위한 대륙병참기지’로 건설하는데 있었다. 당시 이케다 스케타다라는 항만 개발업자가 시도한 울산개발은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서 1943년 5월11일에 지금의 학성공원에서 기공식을 열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 무렵 울산교 50개 건설비용과 맞먹는 500만원이라는 거금이 지금의 남구보다 좁은 울산군 대현면 일대에 뿌려지면서 ‘공전의 부동산 경기’로 온 울산읍내가 흥청거렸던 사정은 당시 일간지 기사가 생생하게 전한다. 해방까지 약 5년간 울산개발 시행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들인 토지가 매암, 여천의 2개동 토지대장만 계산해도 109만평, 조선석유 부지가 15만평이며, 고사동, 용잠동, 장생포동 등을 더하고 임야대장까지 분석한다면 족히 수백만평은 될 것으로 추측된다. 이 막대한 적산토지는 1962년 울산공업센터 결정의 핵심 근가가 되었다. 구체적인 공업단지개발 청사진을 근거로 일제가 매입해 둔 수백만평의 공장용지를 두고 군사정부가 다른 장소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울산이 안고 있는 여러 도시문제 가운데, 구시가지의 비좁은 가로망과 빈약한 기반시설, 태화강 제방과 고질적인 수해문제, 시가지 동쪽 해안선을 모두 잠식한 공단개발은 모두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계획 없이 병참기지 개발에만 몰두했던 일제가 남긴 부(負)의 유산이다.

한삼건 울산도시공사 사장 울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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