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공감의 탄생-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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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공감의 탄생-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 경상일보
  • 승인 2022.04.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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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두어 달 전의 일이다. 내부 보수공사로 인해 공영 주차장이 일시 폐쇄되어 사무실 앞 좁은 빈터에 차를 댔던 날이다. 이미 앞에 댄 차가 있어서 부득이 그 뒤에 가로주차를 하고, ‘근처에 있으니 차 뺄 때 전화를 해 달라’는 메모를 남겨 놓았다.

얼마 안 되어 요란히 전화벨이 울리길래 주차문제로 직감하고 뛰어나갔다. 차를 조금 물린 후, 그 사람이 뺀 자리에 주차하기 위해 기다리자니 일방통행 도로인 관계로 뒤에서 경음기를 울리며 승용차들이 계속 질주해 왔기 때문에 잠시라도 대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멀리 ‘미음㈄’자로 돌아서 다시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다른 차량 한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주차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금세 절망적이 되었다. 자포자기(?) 상태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앞쪽으로 접근하는데, 갑자기 그 차가 재빨리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요행히 한 번 더 거리를 헤매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필자는 사무실로 돌아오며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아마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던 차주는 나에게 차를 빼달라고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근처에 차를 댈 장소가 마땅찮다는 것을 안 그 사람이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자리를 지켜준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주차 공간을 확보해준 그에게 너무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이 바로 배려-말 없는 가운데 이심전심으로 가슴 뛰는 공감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지난달 경상시론에 ‘배려의 재구성’이란 타이틀로 소개했던, 승객에게 마스크를 제공한 버스 기사가 떠올랐다. 현대 도시의 인정이 메말라가는 콘크리트와 철골 숲속에도 이렇듯 피톤치드를 방출하는 마음들이 곳곳에 싱싱한 나무처럼 자라고 있어 사람들이 제대로 숨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였다. 세상은 그야말로 살만한 곳이 아닌가.

오래전부터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다음의 일화는 세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좀 더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한 부부가 주유소에 들어가서 차에 기름을 넣는 사이 주유소 직원이 서비스 차원에서 앞 유리를 닦아 주었다. 기름을 다 넣고 나자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럽다며 한 번 더 닦아달라고 부탁했고 직원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얼른 다시 닦아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편은 아직 덜 닦였다고 말하며 직원에게 화를 내었다. 그 직원은 친절하게 사과한 뒤 혹시 자신이 보지 못한 얼룩이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보며 유리를 한 번 더 닦아냈다.

그때 그의 아내가 조용히 남편의 안경을 벗기고 헝겊으로 렌즈를 깨끗하게 닦아서 다시 씌워 주었다. 그제야 남편은 깔끔하게 잘 닦인 앞 유리창을 볼 수 있었고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앞의 두 사례는 세상에 대한 극과 극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요즘은 모두 제 몫 챙기기에 바쁘고, 다른 사람 배려하기가 쉽게 생략되는 세상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나만이 옳다는 독선과 아집이 팽배한 것이 현실이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인간적 접촉이 드물고 삶이 팍팍해져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 많이 없는 건조한 시대이다. 요즘처럼 대면이 어려운 시기에 특히 많이 발생하는 불신과 억측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훼손하게 된다.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 비아냥과 타박이라는 부정적 접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은 부단한 자기성찰과 역지사지하는 태도로부터 나온다. 물론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쉬운 일일수록 실천이 어려운 법이다.

이제 곧 방역수칙도 많이 완화될 것이다. 차제에 우선 나부터,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쓰고 있는 안경이 어떤 것인지 점검해 봐야할 것 같다. 혹시 내로남불의 누런 얼룩이 묻은 색안경은 아닌지, 왜곡된 상을 만드는 어안(魚眼)렌즈는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위의 일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좀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복원할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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