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65)]당진 안국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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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65)]당진 안국사지 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2.04.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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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매향(埋香), 그 매향에 끌려 안국사지행을 결심했다. 내세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염원하며 갯벌에다 향나무를 묻었다는 기록이 있는 곳이다. 절터에는 무너져 있던 돌들을 수습해 다시 세운 석탑과 삼존불이 당당하다. 석불입상 뒤로 긴 배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있다. 배바위 또는 고래바위라 부른다. 바위를 자세히 보면 암각된 글씨가 두 곳에 보인다. 향나무가 침향이 되기를 바라며 복을 빌었던 매향비다.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에 매향 의식이 유행했으니 그 시기에 새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은봉산 중턱에 있는 안국사지에는 겨울을 견뎌낸 수선화가 가득 피어 향공양을 올리고 있다. 명부전 오르는 길에는 홍매화와 동백이 붉다. 마당의 복수초는 수줍은 듯 하늘거리고 할미꽃은 ‘나 여기 있소’ 얼굴을 내민다. 연못가에 핀 돌단풍과 영춘화, 늘어진 수양벚꽃 마저 수수하니 어여쁘다. 봄꽃들은 부처님 발아래에, 또는 오층석탑을 향해 다소곳하게 피어 있다.

꽃들의 경배를 받고 있는 안국사지 석탑은 오층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일층의 몸돌 위에 4매의 지붕돌만 포개져 있다. 일층 몸돌의 3면은 여래좌상을 1면에는 문고리 형이 조각되어 있지만 그마저 형식적이다. 탑을 받치고 있는 기단석은 사각형 돌덩이 하나에 덮개돌을 슬쩍 얹었을 뿐이다. 매향이 아니라 수더분한 석탑에 마음이 쏠려 기웃이 어깨를 디밀어 본다. 그건 수선화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탑을 향해 한마음으로 일렁인다. 석탑 뒤에 서 계신 삼존불마저 점잖게 두 손을 모으고 석탑을 굽어본다. 비록 온전치 못하지만 고려 중기 석탑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탑이기에 보물 제101호이다.

아까부터 스님이 큰 손수레를 끌며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공을 들여 꽃을 가꾸고 있다. 바로 매향이다. 미륵불이 이 땅에 오는 날, 안국사지에 핀 꽃들은 법화경에서 말한 ‘하늘의 꽃비’인 침향이 되어 떨어질 것이다. 그땐 엉거주춤한 석탑도 오층석탑의 풍모를 찾아 위용을 떨치게 되리라.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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