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혼모는 혼인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을 말한다. ‘싱글’이지만 ‘맘’이기에 아이의 양육이라는 무거운 책임부터 시작했다. 임신부터 엄마는 고통스러웠고 태아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이처럼 어렵게 출생하였지만 아빠는 없고 우려에 찬 시선을 받으며 세상을 시작했다. 미혼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떤가? 미숙하고 충동적인 여성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편견은 우선 아이의 아빠에 향해야 할 것이다. 이 무서운 현실에 겁을 먹고 도망친 남성 말이다. 아마 낙태를 종용하거나 내 핏줄임을 부인했을 수 있다. 어쩌면 남자의 부모가 천륜을 부정하는데 앞장섰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를 세상의 빛을 보게 하고 혼자서라도 키우려는 여성은 더없는 모성애의 용기 있는 어머니인 것이다.
미혼모와 아기 육아를 돕는 입소시설이 있다. 3살 미만의 영유아를 양육하는 미혼모에게 일정 기간 숙식과 직업교육, 양육교육, 가사교육, 교양교육, 상담 등 다양한 자립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울산에는 물푸레, 안단테 등의 시설이 있다. 투명하게 공개된 지출내역서에는 돌반지 값, 가끔 지불된 치킨 비용을 볼 수 있다. 그 초라했을 돌잔치와 쉽지 않았을 간식시간을 연상하게 된다. 서울의 미혼모 시설인 ‘아름뜰’의 이현주(61) 원장은 지난 2월 전국 미혼모자 공동생활지원시설 최초로 미혼모자가족 사례분석보고서 ‘비빌언덕’을 냈다. 그녀는 생각지도 않게 임신해 부모한테도 말 못하며 시설에 들어온 미혼모가 직업교육을 받아 취업해 아이를 키우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애정 결핍이 너무 크거나 마음의 상처가 있는 미혼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미혼모들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원장의 보고처럼 미혼모는 성장과정에서 가정환경이 불안정한 경우가 있다. 필자는 미혼모의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의 학대나 부재로 인한 상처를 알게 된 적이 많다. 계획되지 않은 임신은 자신을 데리고 가줄 남성을 급히 선택한 심리였을 수도 있다. 이 무책임한 남자는 이제 그들의 인생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여자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지려는 남자들이 있다. 결혼식을 앞두고 헤어지자고 통보를 하는 남자들이 꽤 있다. 캠퍼스커플로 만나 결혼해 약사인 아내의 도움으로 고시공부를 몇 년 째 해오던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수소문하며 샅샅이 찾았지만 종적이 묘연하여 분노하며 허망해하던 아내에게 바람결에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미국에서 결혼해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내면의 자기비난과 모멸감을 누르며 버텨온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저렇게 가족을 버리고 다른 인생으로 도망간 것은 황망하다. 이렇게 깃털 같은 책임감으로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이가 있지만 평범한 남성은 자신에게 닥친 의무와 시련을 받아들인다. 아내의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쁘지만 퇴근길에 소주를 마시고 들어오는 남자의 발걸음은 무겁다. 가장은 여성이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가족을 책임지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여러 설문조사에서 나왔다. 미혼모는 이러한 막중한 가장의 역할까지 혼자 해내야하므로 스스로 무너지기도 한다.
가정위탁제도와 미혼모 시설이 있으나 부족하고 지원이 취약하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공적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들이 자립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시설을 나가면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다. 이곳저곳 여러 시설을 옮겨 다니지 않고 한 시설에 머물고 싶은 미혼모는 더 머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미혼모를 돌볼 수 있는 전문 인력도 필요하다. 현행법은 60년 전에 만든 것이라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제는 법과 제도가 변화된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아이 하나 보며 살아갈 용기를 얻는 미혼모 여성들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