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9)]사막에 지은 낙원, 바그돌랏아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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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69)]사막에 지은 낙원, 바그돌랏아바드
  • 경상일보
  • 승인 2022.05.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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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중세도시 야즈드(Yazd)의 골목길 안에는 신비스런 주택들이 숨겨져 있다. 높고 두터운 황토 담장에 달려있는 작은 문들이 주택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대문을 열지 않는 한 그 속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황토 빛 담장 뒤에 숨겨진 이란인들의 살림살이, 그들은 이 척박한 사막에서 어떤 삶의 환경을 만들었을까.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골목 풍경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녹색 식물과 물이 가득한 수조, 바로 정원이다. 서구 정원 양식의 모태가 되었다는 ‘페르시아식 정원’, 예기치 못한 극적 반전을 경험한다. ‘페르시아 정원’을 대표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집이 야즈드에 있다. 이름하여 바그돌랏아바드(Bagh Dolat Abad), 그 집의 정원을 부를 때는 도우라타바드 정원(Dowlatabad Garden)이라고 부른다. 이 집은 실상 서민들의 집이 아니라 18세기에 이 지역을 통치하던 지방 영주의 대저택이다. 성곽처럼 높게 두른 담장, 원통형 망루, 성문과 같은 대문 등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아치형으로 깊게 파고 들어간 입구는 2층 높이의 성문에 해당한다. 길게 외곽을 둘러싼 진입부가 행랑채처럼 대문간과 거대한 대기 공간을 만들었다. 대문간부터 볼트와 아치로 꾸민 공간이 나타난다. 궁전이나 모스크와 같은 고급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요소다. 심지어 스테인드글라스의 투각창을 설치했다. 그 창을 통해 강렬한 햇빛이 신비스런 색조로 산란하며 손님을 맞는다.

대문을 지나 본관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긴 수로의 앞마당이 멀리까지 펼쳐진다. 본관 앞 까지 길게 뻗은 직선 수로로 강렬한 축을 만들었다. 수로 양옆에 규칙적으로 식재된 전나무가 직선 축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수로의 물이 소실점을 향해 멀리 사라진다. 마르지 않는 냇물과 짙푸른 녹음, 바로 사막에서 살아 온 유목민들의 오아시스다.

페르시아인들은 오아시스를 추상화하면서 기원전 6세기에 이미 그들의 고유한 정원 양식을 만들었다. 바로 ‘네 개의 정원’을 의미하는 차하르 바그(Chahar Bagh)가 그것이다. 정원을 기하학적으로 정연한 4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여기에 하늘, 땅, 물, 식물 등 조로아스터교의 4요소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에덴동산, 즉 지상의 낙원을 구축하려 한 것이다. 페르시아 정원은 이슬람 제국을 통해 스페인까지 전파되었고, 무굴제국을 통해 인도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 바로크식 정원의 원조이기도 하다.

▲ ‘페르시아 정원’을 대표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바그돌랏아바드(Bagh Dolat Abad)의 내부공간.
▲ ‘페르시아 정원’을 대표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바그돌랏아바드(Bagh Dolat Abad)의 내부공간.

본관은 2층으로 구성된 팔각형 건물이다. 형태는 다소 단조롭지만 깊게 파고 들어간 발코니가 짙은 그늘을 만들며 조소적 대비를 강조한다. 평면이나 입면구성은 티무르제국이나 무굴제국의 영묘 건축과 유사하다. 이 지역에서 발전한 형식이 제국으로 전파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건물의 중심에 세운 5층 높이의 탑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특징이다. 내부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것이 바로 송풍탑(badgirs; windcatcher)이다. 높이 33.8m, 흙벽돌로 만든 구조물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아케이드를 거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휘황찬란한 빛에 휩싸인다. 황토 빛 외관의 무표정을 극적으로 반전시킨다. 수로에 면한 전실은 그야말로 환상의 색조로 어른거리는 신비의 공간이다. 서구의 어느 바로크 성당에서도 이처럼 현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본 적이 없다. 어둠침침한 공간 속에서 현란한 색채의 빛이 무지개처럼 뿜어 나온다. 그 빛은 바닥 중앙에 설치된 수조를 통하여 투영되면서 온 공간을 휘감고 있다. 실상 스테인드글라스는 7세기경 중동지방에서 개발된 것이다. 12세기 이후 유럽의 교회 건축에서 크게 유행했지만, 그 원조의 품격은 역시 이곳에 남아 있다.

중심공간은 2층까지 개방된 밝은 공간이다. 기학학적 문양의 가느다란 리브 선들이 돔형 천장을 장식한다. 유럽의 고딕양식에서 볼 수 있는 육중하고 근엄한 천장이 아니다. 속눈썹처럼 가느다란 리브선들이 만드는 가볍고 경쾌한 천장은 페르시아인들의 미학이다. 돔의 중앙부에서 밝은 빛이 떨어진다. 바닥의 중앙에도 역시 팔각형 수조를 설치하여 빛을 투영한다. 그러고 보면 모든 방들이 수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생명수의 상징이며, 빛을 반사시키는 조명장치이며, 열을 식히는 환경조절 장치로서 다기능을 갖는다.

뒷방은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송풍탑과 연결된다. 천장으로부터 굴뚝처럼 높게 올라간 탑이 여러 갈래의 개구부를 통해 기류를 빨아들이고 있다. 바닥에는 맨홀이 설치되어 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찬 공기가 주변의 더운 공기를 흡수하여 송풍탑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종이를 찢어 날리면 그 기류의 흐름을 타고 탑 안으로 빨려 올라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기류는 실내에 있는 수조의 물을 증발시켜 가습하는 효과도 유발한다. 실상 그 공간에 들어서면 찬바람이 한기를 느끼게 할 정도로 효과적이다.

송풍탑은 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크기만 다를 뿐 대부분의 집들이 이 같은 장치를 두고 기후를 조절한다. 대청마루가 한옥의 전통적인 냉방장치라고 한다면, 송풍탑은 이란 집의 전통적인 냉방장치이며, 가습장치라고 볼 것이다. 지하의 지열을 이용하는 것이니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지속가능한 방식’이며, ‘친환경 저에너지’의 냉방법이 아닌가. 그들은 이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서 ‘지속가능한 낙원’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했던 것이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된 것일까. 황량하게만 느껴지던 황토빛 도시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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