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보면 세상이 그동안 많이 달라졌다고 하겠지만, 하루하루 살면서 그걸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기껏해야 모임 자리에서 ‘내가 어릴 때는 어땠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정도다. 나도 모르게 지금 세상은 어느 정도 옛날부터 이랬고 앞으로도 어느 정도 오랫동안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 초등학생들도 나중에 대학교에 가고 취업할 것이다. 진학 상황, 취업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틀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랬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지금 그 큰 틀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학교에 다녔고, 부모님도 그러셨지만, 할아버지는 일본제국 안의 조선에서 일본말로 교육받으셨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조선왕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는 지금같은 공교육이 없었다.
1516년에 영국에서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가 나왔다. <유토피아>는 1, 2부로 돼있는데, 1부에서는 현실에서 영국의 부조리한 일들을 얘기하고, 2부에서는 아메리카에 갔다온 뱃사람이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나라 사람들이 많은 일들을 합리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토피아 사람들은 금, 은, 좋은 옷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귀중한 것은 흙, 공기, 물 처럼 자연이 모두 드러내놓았다고 뱃사람은 얘기한다. 유토피아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은 사회제도가 좋고, 독서와 교육 때문이다. 모든 어린이들이 일반교육을 받고, 남녀 대부분이 평생 동안 여가 시간에 책읽기를 계속한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 나라 말로 가르친다. 사투리가 있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한 가지 표준어를 쓴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가 이렇다’고 쓴 것은, 그 당시 영국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좀 ‘이랬으면 좋겠다’고 해서 썼을 것이다. 모든 어린이들이 일반교육을 받고, 자기 나라 말로 가르치고, 남자든 여자든 대부분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책을 읽고, 전국적으로 표준어가 있다. 그런데 이건 지금 세상에 대해서 말해놓은 것 아닌가. 지금 우리 나라 상황과도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100여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세상이 ‘유토피아’가 된 것은 그냥 물이 흐르듯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토마스 모어같은 사람들이 ‘이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고, 그걸 보고 누군가가 이른바 ‘비전’을 가지고 ‘프로젝트’로 만들고 행동했고, 제도가 만들어졌고 그 제도가 널리 퍼진 게 아닐까. 그 결과 지금 우리 눈 앞에 학교 건물이 서있고 교육청에서 교무를 수행한다.
옛날에 살았던 좋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어느 정도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또 다른 어려운 점들이 있다. 교육, 입학시험 제도는 항상 불만거리다. 우리는 ‘미래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잘 하고 있을까.
박원빈 강남동강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