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1일 저녁 무렵이면 울산의 수장이 새로 뽑힌다. 누가 시장이 될지는 몰라도 울산은 이제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물론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도시 전체가 수렁에 빠져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만큼 이제는 도시의 면모를 일신하고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도시를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인가. 재미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100만 울산시민들은 지금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다. 울산은 산업수도도 아니고 금융도시도 아니며 역사도시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육도시, 문화예술도시는 더더욱 아니다. 다른 도시보다 앞서 나가는 분야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울산시민들의 자부심은 바닥을 긴다. 각종 설문조사를 해보면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한숨만 나온다. 청년들이 너도나도 울산은 떠나가고 있는 현실은 기성 세대들의 가슴을 후벼판다.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신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1962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낭독한 치사문은 울산 사람들의 가슴에 DNA처럼 새겨져 있다. 4000년 빈곤을 울산에서 떨쳐버린다는데 울산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이후 울산은 90년대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산업수도’였다. 각종 외국 언론에서는 ‘동아시아의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 소개되기도 했다. 울산 사람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그 뿐, 오늘 울산의 얼굴은 참담하다. 3대 주력산업은 생기를 잃었고, 새로 생기는 스타트업 기업은 싹을 틔울 기미조차 없다. 기울어가는 난파선에 선장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양새다.
인구는 서울로 서울로 긴 행렬을 이루고, 부산과 경남은 호시탐탐 울산과의 병합을 노리고 있다. 6~7년 전부터 시작된 엑소더스는 좀처럼 끝날 줄 모른다.
우리는 누구인가. 울산의 인구는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기 전 8만50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인구가 2015년 120만명에 이르렀다. 농사짓고 고기 잡던 토박이 울산사람들은 지금도 10%를 넘지 못한다. 구름처럼 전국에서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자손들은 지금 울산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떠나면 빈둥지에는 공허함만 남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주인이 아니고 전세 들어 있는 사람 같다.
과거 ‘산업수도 울산’의 위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이 영광스러운 ‘산업수도’의 시기였다면 지금은 산업수도가 해체되고 4차 산업혁명이 전국에 쓰나미로 밀려드는 시기다. 자칫 울산이 지방 소멸론에 휩싸일 수도 있다. 옛날의 부귀를 떠올리며 달콤한 향수에 젖어 있다면 지금 당장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산업은 시시각각 변하고 일자리는 씨가 마르는데 우리는 너무 태평한 세월을 보내는 것은 아닌가.
새로운 시장은 울산의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지난 2017년 7월 선포한 울산의 브랜드 슬로건 ‘The Rising City’를 알고 있는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 슬로건이 현재 시점에 맞기나 한 것인지 궁금하다. 슬로건은 도시 발전의 지향점을 알려주는 좌표같은 것인데, 그 동안 우리는 목표지점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달려왔다.
울산시민들은 지금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다. 산업수도에 의지해 있던 시민들의 자존심은 이제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민선 8기 집행부는 현실을 차갑게 직시하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치적쌓기, 허장성세, 요란스러운 쇼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오직 시민만을 보며 내실을 기해야 할 때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