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어린이 세대에 빚진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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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어린이 세대에 빚진 선거
  • 경상일보
  • 승인 2022.06.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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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정 온남초 교사

한 동안 출퇴근길이 시끌벅적했다. 이른 아침부터 거리 곳곳에서 선거 후보의 사진과 이름이 크게 적힌 팻말을 마주했다. 나눠주는 명함을 거절해도 길바닥에 떨어진 명함들이 계속 인사를 건넸다. 회전교차로에선 선거운동원들이 손가락으로 번호를 만들어 보이며 율동을 했고, 트럭에 실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여러 후보들의 홍보송이 동시에 귀를 때렸다. 횡단보도 신호 앞에서 건물을 덮은 초대형 현수막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저 현수막들이 선거 뒤에 쓰레기가 될 것을 생각하니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싶어졌다.

올해는 3월과 6월에 선거를 두 번이나 치렀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올해 실시한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에서 발생한 선거홍보물(종이 공보물, 현수막, 투표용지, 벽보)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 5억4000만 개를 사용할 때의 배출량과 같다고 한다. 거기에 유니폼, 비닐 코팅된 명함, 유세차량 등을 포함하면 2주 남짓한 선거운동이 끝나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남는 것이다. 최근에는 철지난 현수막을 이용해 마대나 에코백 등을 새롭게 제작하는 단체들도 있지만, 이름과 얼굴이 있는 선거 현수막은 재활용도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선거홍보물을 만들 수 있는 건 나라에서 선거후보자들의 선거운동 비용을 보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전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시민의 세금이다. 3월에 있었던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1000억 원이, 지난 7회 지방선거에서는 약 3000억 원이 세금으로 보전되어 후보들에게 돌아갔다. 선거비용제한액 내에서 돈을 쓰면 다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형 정당일수록 공격적인 규모의 선거운동을 한다. 더 많은 홍보물이 제작되는 만큼 더 많은 쓰레기가 남지만 이것은 국가가 허락한 쓰레기다. 결국 내가 낸 세금이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데 사용된 셈이다.

선거홍보물과 관련한 공정성 문제도 있다. 득표율 10% 이상인 사람에게만 선거 비용이 보전되기 때문에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들은 홍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애초 선거 비용 보전은 능력이 뛰어나지만 돈이 없어 선거에 나오지 못하는 후보들이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이는 결국 대형 정당이 기회를 독식하게끔 하고 세금이 낭비되는 동시에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가 실상은 탄소배출 축제였고, 다당제를 채택한 나라의 학생들이 선거운동 기간 길에서 본 색깔은 두 가지뿐이라고 말한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과 실제 사이의 모순을 설명해야 한다면 선거의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어린이 세대에 빚진 선거를 한 것이다. 다음 선거까지 남은 4년,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민정 온남초 교사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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