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철 춥고 건조한 날씨와 미세먼지 탓인지 25개월 된 어린 딸이 또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보지만, 진료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소아과 중 한 곳은 오늘도 대기 인원이 많다. 예방접종, 검진, 잔병으로 소아과를 자주 방문하게 되는데 매번 상황은 비슷하다. 많은 보호자들이 아픈 아이를 안아 달래가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환아의 보호자로서, 또 의사로서 해결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아도 참으로 답답한 환경이다. 최근엔 뉴스에서도 소아과 의사와 병원 부족 현상을 많이 다루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개선이 될지 참으로 막막하다.
각종 자료에서도 우리나라의 출산율 감소를 보여준다. 꾸준히 감소해왔고, 2017년 이후로는 합계출산율(한 여자가 가임기간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각종 교육기관, 병원 등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던 문제다. 학교 선생님의 숫자와는 반대로 소아청소년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한 학급의 수는 울산지역 2022년 평균 21.06명이다. 그렇다면 소아청소년의 수에 비해 소아과 의원과 의사가 많아야 당연할텐데 왜 시설은 부족해지고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한곳에 몰릴까? 학교와 반대되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진다.
먼저 소아과 전문의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의사는 의대를 졸업하면서 의사면허를 취득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일반의’로서 진료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 후 ‘전공의’라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해당 파트의 시험을 통과하면 특정 과목의 ‘전문의’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반의’와 각 과목의 ‘전문의’는 진료 범위의 제한이 없다. 일반인들이 가장 모르고 있는 부분이다. 예로써, 내과 전문의가 정형외과 진료를 볼 수도 있고, 신경외과 전문의가 소아과 진료를 볼 수도 있다. 단지 개인적인 수련의 차이가 있어 본인의 진료에 제한을 둘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아과 전문의가 꼭 소아과 진료를 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소아 진료를 하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다.
이렇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의료수가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매번 대두되는 문제이지만 그만큼 중요하다. 국가에서 정한 의료수가는 소위 말하는 진료 가격이다. 수익을 위한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정해진 수가보다 가격을 올릴 수 없게 돼 있지만, 이로 인한 환경변화로 아이러니하게 환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환자 수가 줄어들었고, 고정된 의료수가 때문에 많은 소아과 의원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무리 사명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병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같은 시간에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과목’으로 의사는 자연히 몰린다. 많은 전문의들은 더 이상 자신의 전문 과목을 진료하지 않는다. 외과, 내과, 산부인과 등 ‘기피과’라고 불리는 과목들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각종 협회에서 수가인상을 요구하지만 개선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충분한 수의 의사가 있음에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과목들은 ‘기피과’가 되어버렸고, 의사들은 필수 과목의 수가인상을 기대하기보다 필수 과목을 떠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22년 4분기 기준 울산지역의 소아과 의원은 32개로 광역시 중 가장 적다. 반대로 같은 기간에 합계출산율은 광역시 중 가장 높다. 소아과의 부족문제가 울산광역시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광역시 중에서도 울주군의 소아과는 한두 개 정도로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지방으로, 도시외곽으로 갈수록 소아과는 찾기가 어렵다. 의사도 어디까지나 직업의 하나이기에 타 직업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은 점점 도시로 모이고, 경영의 어려움이 눈에 보이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 기피하는 일일수록 그에 맞는 성과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자연스레 ‘기피’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을까. 의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학문인만큼 모두가 피해보지 않는 안정된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 특히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최선의 의료가 제공될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성민 외과전문의 본보 차세대CEO아카데미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