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빌바오시에 있는 구겐하임미술관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가 설계하여 1997년 개장했다. 건축물의 미적 상징성과 문화시설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건물이다. 주력산업인 철강업과 조선업의 쇠퇴로 침체됐던 공업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미술관을 통한 도시재생의 사례를 배우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 빌바오시다. 티타늄으로 지어진 빌바오 구겐하임은 ‘메탈 플라워(Metal Flower)’라 불리며 ‘빌바오 효과’란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도시, 문화, 경제 분야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007 언리미티드’에도 등장한다.
프랭크 게리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미국 현대 해체주의 건축의 거장이다. 젊은 시절에는 기괴한 건축 디자인으로 인해 뉴욕 중심의 주류 건축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였지만,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의 캘리포니아에서 자신의 독특성을 유지하고 키워나감으로써 프러츠커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구겐하임과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 설계도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산업·항구도시였던 빌바오는 1980년대 들어 철강·조선산업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의 조선업 발전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시아 국가들이 철강 및 조선산업에 진출하던 시기와 맞물려 유럽의 조선산업과 지역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유럽 도시들은 엄청난 실업률로 인한 인구감소와 범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산업 부흥에 주력했다. 그 결과 도시재생에 성공한 사례들이 속속 등장했는데, 빌바오시도 그 중 하나다. 유일무이하게 아름다운 디자인의 구겐하임이 죽어가는 도시에 심폐소생술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재정적, 행정적 지원 없이 단순히 랜드마크라 할만한 미술관 하나가 들어섰다고 해서 도시가 재생됐다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주정부는 막대한 기금을 마련해서 항구 지역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외 미술관에 내주고 후원도 했다. 또한 미국의 구겐하임미술관도 재단의 대표적인 컬렉션을 해외에 제공하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미술관 외에 수변 공간을 정비하여 관광객을 위한 숙박 및 식음료 서비스 분야를 개발했으며, 도시 곳곳의 인프라 확충과 디자인 요소도 개발했다. 컨테이너 하치장이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놀이터로 바뀌고, 노면 철도 트램과 아름다운 디자인의 보행자 전용 다리도 생겼다. 긴 세월과 집중적 투자로 인구 35만의 빌바오시는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됐다. 구겐하임미술관은 개관 3년 만에 초기 투자액의 7배가 넘는 수익과 4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같은 ‘빌바오 신드롬’의 배경에는 구겐하임미술관 외에도 또다른 주역들이 존재한다. 첫째는 도시재생종합전략 ‘Ria 2000종합계획’을 구상하고 단계적으로 계획을 추진해나간 스페인 바스크자치주의 끈기와 노력이다. 여기에는 바다와 연결된 도심을 관통하는 네르비온강 수질 개선, 산업용수 및 생활용수 정화시설 확충을 통한 도시 환경과 이미지 개선도 들어 있다. 둘째는 도시재생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 체계적인 도시 공공기반시설을 정비한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이라는 민관협력체의 역할이다. 이들은 공항터미널, 트램, 고속운송시스템, 문화레저센터 건립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고, 지역 전통축제를 살리고, 미술관이 위치한 네르비온 강변 주변에 산책로와 보행교를 만드는 등 공원 형태로 되살리면서 쾌적한 외부 공간을 제공했다.
물론 빌바오 도시 재생의 사례에서도 도시 재생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와 지역민에게 골고루 도시 재생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여전히 지적받고 있다. 호랑이연고가 만병통치약으로 각 가정의 상비품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적재적소에 유용한 좋은 약들로 대체된 것처럼, 하나의 사례로 모두가 혜택을 보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쇠퇴하는 도시의 문제점 파악을 정확히 하며 이에 대응하는 해결책을 찾는 방향을 다양하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빌바오 신드롬 현상을 보면, 인접한 바다와 연결된 태화강이 있는 울산은 많은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도시로 생각된다.
정수은 울산과학대 건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