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길거리 이것 저곳, 심지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의 머리 바로 위에도 위협적인 아우성들이 넘쳐 나고 있다. 우리의 행복한 기억속로 남아 있는 그 ‘깃발의 아우성’이 아닌 ‘현수막의 아우성’ 때문이다. 민관(民官)의 오랜 노력과 희생 그리고 많은 비용을 들여 이루어낸, 그나마 볼만하던 도시의 공간과 경관들이 어느날 갑자기 값싼 현수막들로 뒤덮여 버렸다. 비단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도시들이 최소한의 배려심,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현수막들로 가득 차있다. 최근에 인천의 한 여대생이 낮게 걸려 있는 정당 홍보용 현수막에 목이 걸려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고 불쾌하게 하고 있다.
현수막이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의 목적으로 거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천을 의미한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현수막(懸垂幕)이란 ‘선전문, 구호문 따위를 적어 드리운 막’으로서 건물 벽에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막을 말하며, 횡단막(橫斷幕)은 ‘건물의 외벽이나 큰 방의 벽에 내건 가로로 긴 막’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도로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홍보 혹은 선전 목적의 직사각형 막들은 가로의 형태로 되어 있어서 횡단막이란 표현이 정확하지만 우리는 관습적으로 현수막으로 이해하고 있다.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진흥에 관한 시행령’에 근거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울산시옥외광고협회 자료에 따르면 울산에는 369곳(남구 72곳, 중구 92곳, 동구 53곳, 북구 80곳, 울주군 72곳)의 공식 현수막게시대가 있다. 현수막게시대의 설치장소가 대부분 보행자와 운전자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장소임을 고려하면 지정된 공공 현수막게시대 만으로도 정보전달의 효과는 충분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수막게시대 이용약관’에는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내용을 표시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현수막들은 이러한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수막의 공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현수막이 단순한 정보전달의 역할을 넘어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도시공간과 도시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도시경관이란 도시를 형성하는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과 주택과 상업건축물, 도로와 교량과 인공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경관이 중요한 이유는 그 도시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에게 공간적 체험과 인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인이며, 도시 경쟁력의 중요한 수단인 도시 이미지 형성요인이기 때문이다.
각 도시와 지자체에서는 도시 경관디자인 계획을 수립하고 경관 가이드라인을 규정하고 제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과 도시 시설물들은 계획단계에서 반드시 관련 경관심의를 받아야만 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아파트 단지, 중대규모의 상업용 건물에서부터 도로변의 버스정류장, 가로등 조차도 공익적 관점에서 심의와 자문을 거친다. 이렇듯 전국의 많은 도시들이 매력있는 도시경관 형성을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정치적 목적의 현수막들은 도시의 경관을 저해하고 이로 인한 시각적 불편함, 나아가 경관적 혼란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울산의 경관을 형성하는 자연적인 요소들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인공적인 요소들은 우리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개선·발전시킬 수 있다. 오래전 정보전달 매체들의 종류와 방법이 제한적이던 시절에 현수막의 사용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수많은 SNS와 IT기반 정보전달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에 과연 현수막게시대의 가치가 도시경관의 가치보다 중요한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다른 도시들과 달리 울산만이라도 현수막 사용에 대한 현명하고 깊이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우리의 하루가 예의 없이 여기저기 결려 있는 현수막들이 주는 위협, 불안함, 불쾌함으로 채워지기에는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