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강원도 속초의료원은 응급실 전문의가 부족하자 응급의료센터 운영을 축소하기로 하고, 연봉으로 3억원 가량을 제시하면서 응급실 전문의 초빙 공고를 했다. 그러나, 지원자는 단 한명도 없었고, 할 수 없이 연봉 4억2000만원을 제시하면서 2차 초빙공고를 내 겨우 필요한 정원을 모집했다.
아무리 험지라도 하더라도, 그 정도의 연봉이면 1차 때부터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였는데, 연봉 4억2000만원을 제시하고서야 겨우 모집정원을 채웠다고 하니, 의사들의 높은 콧대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의료공백에 관한 뉴스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응급실 전문의뿐만 아니라 흉부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도 전문의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난해 대학병원에서 수련의를 뽑는데, 흉부외과는 정원의 35%, 소아과는 정원의 28%, 산부인과는 정원의 70% 밖에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7월 말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가 뇌출혈로 병원 내에서 쓰러졌는데도, 수술을 할 전문의가 없어서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벌어졌고, 대형병원에서도 소아과는 폐지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삼성서울병원이 방사선종양학과 계약직 PA 간호사 채용 공고를 냈다가,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PA 간호사는 ‘진료보조인력(PA·Physician Assistant)’에 해당하는 간호사인데,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가 수행함으로써 의료법 위반이 아니냐는 논란이 진작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수가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진료보조인력을 사용하고 있고, 현재 그런 인력이 전국적으로 1만명 이상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의료공백은 일부 전문과목의 의료수가가 낮은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의료수가가 낮아서 의사들이 꺼린다는 그 분야조차도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의료공백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사 숫자의 부족이라고 보아야 한다.
국내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3273명이었는데, 의사들이 의약분업에 찬성하는 대가로 2006년까지 정원을 축소해 3058명이 됐다. 그리고 그 이후 현재까지 17년 동안 정원을 동결했다. 고령화에 따라서 의료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 1955년~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병원을 출입하게 되면, 의료수요는 더욱 폭증할 것인데도, 의대정원은 20년 이상 늘어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점 때문에 전 정부에서는 2020년에 의대 정원을 400명 늘려서 10년 간 한시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겨우 400명 늘리는데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파업을 결정하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가 수업 및 실습을 거부하는 등으로 맹렬히 저항했다. 이에 전 정부는 바로 백기를 들었다. 추진력이 나약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반갑게도, 지난 2월21일 여당인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의사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게 된 것은 필수의료에 대한 낮은 수가체계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결과”라고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의사 수를 늘리고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지원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 역시 신속하게 의료인력 부족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발언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의사 수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22일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윤 대통령도 소아과 인력 부족이 정책 탓이라고 하면서 의사 숫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의사들의 집단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의대정원 확대를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대정원 확대는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사안이다. 여당에서도 의대정원 확대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만큼,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측면에서 전 정부와는 확실히 다른 추진력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